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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리포트]횡성축협 ‘명품 한우’

입력 | 2009-11-07 03:00:00

“우린 족보가 달라” 콧대 높은 소




전국의 쟁쟁한 한우(韓牛) 브랜드들은 매년 ‘올해의 한우 브랜드 경진대회’ 때면 허탈한 한숨을 쉬어야 했다.

맛이나 영양가에서 내로라하는 한우 브랜드들도 1위의 벽을 넘을 수가 없었다. 작년까지 3회 연속 ‘횡성축협 한우’ 브랜드가 1위를 굳건히 지켰기 때문.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해부터 특이한 규정이 생겨버렸다. 5년 안에 3번 이상 대상을 탔는데 다시 상위 5위권에 진입하면 상을 주는 대신 ‘명품 인증서’를 주기로 한 것. ‘신인 후배’ 브랜드의 육성을 위해 ‘형님’인 횡성축협 한우에게 양보를 부탁한 셈이다.

한우 심사를 담당하는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횡성축협 한우가 너무 대상을 많이 받다 보니 수년 전부터 다른 브랜드들이 (횡성축협의) 들러리를 서는 것 같다는 불만을 털어놨다”고 말했다. 그만큼 횡성축협 한우는 ‘명품 한우’의 대명사로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다.

○ 철저한 혈통관리 현장

소비자도 정부도 인정한 명품 한우의 비결은 무엇일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3일 강원 횡성군 횡성축협을 찾았다. 횡성군 서원면 창촌리에 자리 잡은 횡성축협의 생축장은 쉽게 말하면 소 사육장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거대한 연구소 같았다. 2만8000m² 규모의 생축장에는 송아지, 뚱뚱한 소, 날씬한 소 등 각양각색의 소 47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었다. 이들에게서 우수한 형질의 유전자를 발견해 내고 이를 육성하는 것.

생축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횡성소 ‘F5(꽃미남 5인)’가 여유롭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엄밀한 심사를 거쳐 횡성에서 가장 우수한 유전자를 갖춘 수소로 꼽힌 5마리다. 말 그대로 등심 면적이 넓고 우량한 ‘몸짱’에다가 생김새도 유난히 깔끔했다. DNA도 우수해 ‘F5’라고 불린다. 횡성축협은 앞으로 정부 승인을 얻어 ‘우수 유전자 시범사업’ 대상인 F5의 정액을 횡성의 모든 어미 소에게 제공해 우수한 후손을 얻을 계획이다. 우수한 횡성의 피를 일관되게 이으려는 것이다.

횡성축협의 F5 관리는 남달랐다. 우리당 4, 5마리씩 같이 사는 일반 소들과 달리 각각 독방을 썼다. 다른 소들과 부딪치며 받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배려다. F5의 식량인 수입 건초를 일반 소들은 먹을 수 없다. 횡성축협 관계자는 “지금은 국가가 한우의 정액을 공급하고 있지만 1, 2년 뒤 지자체가 정자 관리 사업을 허가 받으면 횡성군 농가에 널리 보급해 우수한 한우 생산을 대폭 늘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빠 소는 물론 엄마 소 관리도 엄격했다. ‘미스 횡성 소’로 꼽힌 암소 12마리는 VIP 대접을 받으며 우수한 난자를 대리모들에게 제공한다. 횡성축협은 이 12마리를 찾기 위해 4년 전 육질 최고등급(1++등급)을 받은 도축 소들의 내력을 추적했다. 이 소들을 낳은 어미 소들은 육질 좋은 한우를 많이 출산할 수 있기 때문. 수소문 끝에 찾은 1++ 배출 어미 소는 약 1만5000마리. 이 가운데 쇠고기 맛을 좌우하는 근육 내 지방의 양이 풍부하고 육중한 소만 골라 이같이 추려냈다.

횡성축협의 또 다른 강점은 한우프라자에 있었다. 복잡한 유통단계 없이 소비자와 산지를 직접 연결해주는 판매 방식이다.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방향으로 달리다 새말 나들목에 들어서면 ‘횡성축협 한우프라자’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각지의 소비자들이 농가의 한우를 쉽게 찾아 먹을 수 있도록 큰길가에 세웠다. 채수형 횡성축협 상무는 “전체 매출의 95%가 수도권 소비자에게서 나올 만큼 소비자들이 쉽게 찾아와 싼값에 고기를 사간다”며 “유통마진을 줄일 수 있어 농가로 돌아가는 이익도 크다”고 설명했다.

○ 후발주자로서 부단한 연구

횡성축협 한우가 처음부터 잘나갔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브랜드 출범 당시 횡성한우를 아는 소비자는 드물었다. 이때 횡성축협은 “명품 쇠고기의 색깔은 암적색입니다. 새빨간 색이 아닙니다”라고 소비자들에게 외치고 다녔다. 고기를 도축해 1주일가량 가공공장에서 0∼2도를 유지하며 숙성시키면 고기가 암적색을 띠기 때문. 숙성된 고기는 씹는 느낌이 부드럽고 더 담백하다는 연구에서 나온 차별화 전략이다.

하지만 초반에는 이렇듯 톡톡 튀는 전략도 먹히질 않았다. 시장에서는 ‘횡성축협 한우가 1주일간 썩힌 고기를 팔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비자들도 못 미더워하며 당시 유명했던 브랜드를 선호했다. 이럴 때마다 회사 직원들은 ‘일단 한 번만 먹어 보라’며 홍보를 했고, 횡성축협이 횡성군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으로 소비자들을 불러들였다. 시간이 흘러 괜찮다는 얘기가 입소문으로 돌더니 이제 횡성을 찾는 외지인이 부쩍 늘었다.

쇠고기 가운데 선호하지 않는 양지, 사태, 내장 등의 부위를 적극 상품화한 시도도 통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등심 외에 앞다리, 뒷다리 부분 등을 고루 섞어 떡갈비, 소시지, 육포, 고로케 등 다양한 가공식품을 내놨다. 소 한 마리에서 전체의 30%만 고급육으로 쓰이고 70%는 비선호부위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생산성 향상을 위해 적극 활용했다는 설명이다.

○ 위생 관리로 세계시장 노린다

횡성축협은 일찍이 쇠고기의 위생관리와 안전성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2004년부터 농식품부의 지원을 받아 쇠고기 이력추적제를 시범적으로 실시했다. 대부분의 경쟁 브랜드들은 2008년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이 점화되고 나서야 주목한 제도다. 실제로 쇠고기 이력추적제가 전면 의무적으로 실시된 것은 올해 6월 들어서다.

안전성 문제는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핵심적인 과제다. 쇠고기는 광우병, 구제역 등 각종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 고명재 횡성축협조합장은 “소를 대량 생산하는 해외업체에 맞서 가격 경쟁으로 승부하기는 힘들다”며 “품질을 높이고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해 해외 고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횡성=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횡성에 가면 사람보다 한우가 많다▼
지역경제 살린 일등공신… 관광객-일자리-인구 늘어

 
강원 횡성군에 등록된 주민과 한우 중 어느 쪽이 더 많을까? 답은 한우다. 횡성군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군 인구는 4만3566명, 등록된 한우는 4만3882마리로 사람보다 약간 많다.

횡성군은 “이는 횡성축협 한우가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으면서 수익성이 높아지자 농가들이 사육 마릿수를 늘렸기 때문”이라며 “한우가 많아지다 보니 120곳의 한우 전문식당, 130곳의 한우 판매점, 10곳의 가축병원이 생겨나는 등 자연스럽게 한우 관련 산업도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보다 많은 한우는 지역경제를 살린 일등 공신이다. 지난해 10월 열린 ‘2008 횡성한우축제’에는 58만여 명이 다녀갔다. 축제가 단 5일 동안 진행됐던 점을 감안하면 축제 기간에는 매일 군 인구의 2배가 넘는 관광객들이 횡성군을 찾은 셈이다.

관광객들은 한우를 맛보기 위해 아낌없이 지갑을 열었고,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로 직결됐다. 횡성군은 “관광객 1인당 평균 7만3700원을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축제가 가져다준 경제적 파급효과는 직접 유입 금액만 367억여 원, 생산·고용유발 효과까지 감안하면 총 525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횡성군을 찾은 관광객들의 특징은 빈손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 군 관계자는 “관광객들의 지출을 항목별로 조사해 보니 식음료비가 32.5%, 쇼핑비가 31.7%에 이르렀지만 유흥비는 7.7%에 불과했다”며 “외지보다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한우를 먹을 수 있어 식음료비와 쇼핑비 비율이 높다”고 귀띔했다.

자연히 횡성군의 인구도 늘어났다. 횡성을 찾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1년 내내 이어지면서 소매업, 음식업, 여객업 등에서 일자리가 늘어났고 매년 감소하던 횡성군 인구는 2007년부터 증가세로 돌아섰다. 장신상 횡성군 축산과장은 “1995년부터 시작된 ‘횡성한우 명품화사업’으로 군 전체가 되살아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지속적인 관리, 다양한 행사 등을 통해 횡성을 대한민국의 한우산업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