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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불면 권하는 사회…‘잠 못 이루는 밤’

입력 | 2009-11-07 03:00:00

◇ 잠 못 이루는 밤/엘뤼네드 서머스브렘너 지음·정연희 옮김/288쪽·1만3000원·시공사




불면은 잠을 자고 싶거나 자야 하는데도 습관적으로 잠들지 못하는 것, 또는 수면 상태를 지속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불면의 원인은 개인에게서만 찾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런 통념이 틀렸으며 불면은 사회적 문화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잠자는 시간, 홀로 깨어 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고립된 것과 같은 고통이다. 책은 이런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회 문화적 차원에서 많은 이들이 경험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에서 문화사를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불면이 어떻게 발생했고 인간이 불면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밝히고자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문헌, 편지, 예술작품을 인용한다. 그러면서 인류의 밤과 어둠에 대한 인식과 불안을 탐구한다.

초기 인류는 짐승과 적의 위협 등 열악한 잠자리 환경 때문에 불면에 시달렸다. 또 낮보다 밤에 수렵과 채집을 벌였다.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은 하루를 밤으로 계산했는데, 오늘은 밤(po), 내일은 밤의 밤(apopo)으로 불렀다. 고대인들에게 밤은 현존의 영역이었고 낮은 ‘밤의 부재’이자 휴식기였다.

중세의 기독교 사상은 잠을 죄악으로 여겼다. 밤은 악의 힘이 번성하는 시간으로 인식됐다. 수도사들은 악마가 죄스러운 행위를 부추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혼자 잠잘 수 없었다. 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모든 신자들은 항시 깨어 있어야 했다. 중세 프랑스의 시 ‘티토렐’의 주인공은 눈을 절대 감지 않는 반(半)요정이어서 잠을 잘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

근대에도 잠은 삶의 중요한 영역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경제와 무역이 활성화하며 수면 시간은 줄어들었다. 근면을 강조한 프로테스탄트 윤리는 잠을 잠식했다. 노예무역으로 들어온 차, 커피, 설탕, 담배도 잠을 방해했다. 독일의 저술가 볼프강 시벨부슈는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영성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성취하려 했던 것을 커피가 인체에서 화학적, 약리적으로 성취했다”고 말했다.

1750년부터 1900년까지 자본주의가 발달하며 불면의 원인은 다양해졌다. 노동자들은 밤에도 일해야 생계가 가능했다. 반면 자본가들은 매춘과 카페 등 여가를 즐기느라 수면 부족에 빠졌다. 마르크스는 “드라큘라처럼 잠자지 않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고딕적 천재성”이라고 비꼬았다.

불면은 도시의 발달로 심화한다. 소란과 유흥시설이 증가하고 범죄가 늘면서 불안과 불면이 증폭되었다. 이 시기 유럽의 밤 문화는 꽃을 피운다. 1755년 영국 의원 호러스 월폴은 일기에서 “한밤중까지 국회에서 토론하고, 오전 5시까지 무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생활이 불만”이라고 적기도 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잠들지 말라는 이데올로기는 지속된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잠은 겁쟁이들의 것”이라고 말했고,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9·11사태 이후 중세 십자군 원정을 예로 들며 깨어있는 것이 미덕임을 강조했다. 미국의 한 칼럼니스트는 9·11테러를 ‘테러분자 중 역사상 최강의 국가를 공격할 만큼 미친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그릇된 확신을 품고 수면에 빠져있던 미국인을 깨운 모닝콜’로 묘사했다.

현대인의 불면은 심각한 수준이다. 미국국립수면재단의 2005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1주일에 2, 3일 이상 불면을 경험했고, 일본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인의 1990년 평균 수면시간은 1970년보다 30분 줄었다. 영국 러프버러 수면연구센터는 ‘수면 부족에 의해 사고의 혁신과 유연성, 위험성 예측, 자신의 강점과 약점에 대한 인식 능력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 불면의 개선방안을 제시한다. 수면제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슬로 푸드(slow food) 운동에서 파생된 슬로 리빙(slow living)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슬로 리빙과 슬로 푸드는 근거리 농산물 이용 등 윤리적 소비와 시간을 즐기는 방법에 초점에 맞춘다. 분업화된 세계 경제 체제 속의 부속물처럼 살지 말고 스스로 생활 리듬을 조절하라는 것이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