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어여뿐 자태를…” 신여성 눈길 잡은 비누-화장품 광고
1930년대 신문에 실린 세안크림 광고. 동아일보 자료 사진
《“어여뿜과 매력을 늘 보존하실 여러분! 깁뿐 소식이 있읍니다. 가정에서 손쉽게 삼사분 치료로 살결이 근본적으로 곱고 히게 되는 신가정 미백료법이 발명되엇습니다. 족분단장을 않고라도 늘 어여뿐 자태를 보존하실 수 잇으며 더위에 거칠기 쉬운 살결을 보호하고 얼굴에 생긴 잡티와 여드름 잔주름을 업새고 맛사-지 료법의 대응이 되는 미안료법입니다.” ―동아일보 1938년 7월 28일 ‘레온세안크림’ 광고》
1920, 30년대에는 교육받은 여성의 수가 늘어나면서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해졌다. 1886년 이화학당이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으로 문을 연 후 정신여학교, 신명여학교, 숙명여학교와 같은 여학교가 연이어 설립됐다.
도시 인구가 늘어나면서 극장에서 표를 파는 ‘티켓걸’이나 엘리베이터 문을 여닫는 ‘승강기걸’ 같은 새로운 직업군도 등장했다. 풍요하다고 말하기는 힘들지언정 벌어들인 수입의 일부를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여성층이 등장한 것이다. 새로운 도시문화를 상징하는 이 여성들은 말투와 옷 입는 법이 달라 기성세대에게 비판을 받기도 했다.
세태를 반영하는 신문 광고에는 경제력을 갖추게 된 여성의 지갑을 공략하는 화장품 광고가 줄을 이었다. 1925면 10월 22일에는 ‘가테이 비누’ 광고가 눈에 띈다. “얼굴의 미를 더하며 윤택을 더하는 가테이 비누. 피부의 보호에 적당하도록 만든 가테이 비누를 상용하면 절대로 살결은 것칠어지지 안슴니다”라고 알렸다.
나이 든 여성을 위한 염색 광고도 눈에 띈다. 1940년 5월 11일에 실린 ‘나이수’ 염색약 광고에는 “백모 적모 염(染). 애써하신 화장도 머리가 적황색이면 허사! 나이수는 언제든지 깜앗케 잘 들고 윤태가 오래가고…”라는 문구가 적혔다.
광고에 나타난 여성의 옷차림에도 변화가 엿보인다. 1920년대 화장품 광고 속에 그려진 여성들은 대부분 몸매 선이 드러나지 않는 풍성한 한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부터는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는 몸에 붙는 서양식 원피스를 입은 여성의 모습이 주류를 이뤘다.
‘신녀성’ ‘여자계’ ‘신가정’ 등과 같이 여성을 위한 잡지가 발간되면서 당시 신문에는 잡지 광고도 자주 실렸다. 1933년 12월 31일 동아일보에 실린 ‘신가정’ 신년호 광고에는 ‘남기자가 뒤져 본 핸드백’ ‘화염에 싸여 두 마리의 개’ ‘세계 부인운동의 신전망’ ‘조선 여성 인물 순례’와 같은 다양한 화제의 기사 제목이 소개됐다.
오늘날에도 무수히 많은 광고가 아름다워지고 싶은 여성의 욕망을 자극한다. 이제는 ‘광고 공해’ ‘광고 홍수’라는 용어가 진부한 표현으로 여겨질 정도로 다양한 매체를 통한 광고가 대중을 공략하고 있다. 광고의 진실성을 가리는 소비자들의 현명함도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