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왼쪽), 예멜리야넨코 표도르
예멜리야넨코 표도르(33·러시아). 그는 역시 '지상 최고의 파이터'였다.
8일 열린 '스트라이크포스 20' 대회에서 표도르가 브렛 로저스(28·미국)를 한방에 누르는 장면은 과연 그가 현역 최고의 '격투기 황제'라는 말을 실감하게 했다.
표도르의 경기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36년 전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이소룡(李小龍·리샤오룽·미국명 브루스 리)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이소룡과 표도르가 33세의 같은 나이 때 맞붙었다면 누가 이겼을까'하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해봤다.
표도르는 183㎝, 106㎏의 당당한 체격에 러시아 무술인 삼보를 연마한 싸움 기계. 171㎝, 67㎏(가장 많이 나갔을 때의 추정 몸무게)의 이소룡은 중국 무술인 쿵푸의 영춘권을 배워 나중에 절권도라는 독특한 무술을 만든 쿵푸 달인이다.
체격과 파워 그리고 맷집이 좋은 표도르가 제한된 공간에서는 상대를 코너로 몰아붙인 뒤 승부를 낼 수도 있지만 탁 트인 공간에서는 스피드가 뛰어난 이소룡이 빠르게 움직이며 급소만 노리는 전광석화 같은 타격술을 발휘해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종류의 무술이 맞붙는 격투기 모습은 이소룡이 주연한 '용쟁호투'나 '사망유희'같은 영화에서 이미 나온다.
현실의 격투기 무대에서 최강의 위치에 오른 표도르와 영화배우인 이소룡을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소룡은 스크린 밖에서도 뛰어난 파이터였다.
이소룡은 홍콩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학생 복싱 챔피언 출신인 또래의 영국 학생과 발차기를 하지 않는 조건으로 대결을 해서 주먹만으로도 승리한 적이 있다.
또한 그가 미국에서 쿵푸 도장을 열어 관원들을 지도하던 1964년 때 비 중국계 사람들에게 쿵푸를 전파하는 데 불만을 품은 쿵푸 고수가 도전을 해온 적이 있다. 조건은 이소룡이 패할 경우 비 중국계 사람들에게 쿵푸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
이 대결에서 이소룡은 3분 만에 상대를 바닥에 쓰러뜨리고 항복을 받았다. 그러나 3분이 너무 오랜 시간이라고 생각한 이소룡은 급소를 쳐서 상대를 순식간에 넘어뜨리는 새로운 형태의 쿵푸를 개발했고 이게 바로 절권도다.
그의 생일인 11월 27일이나 사망일인 7월 20일이 가까워 오면 여러 나라에서 '이소룡 영화 주간'을 정해 그가 주연한 영화들을 하루 종일 상영하고 그에 대한 상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갈 정도로 '영원한 월드스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댄스의 귀재였다는 것. 108가지의 차차차 스텝을 구사하는 이소룡은 1958년 홍콩 차차 댄스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이런 이소룡의 예술가적 기질과 무술 실력이 어울려 영화를 통해 쿵푸가 전 세계에 최고의 동양 무술로 알려졌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한국의 태권도도 그 위력이나 화려함에서 결코 쿵푸에 뒤지지 않는다. 사실 올림픽 등에서 메달을 놓고 경쟁하는 태권도의 경기 모습을 TV로 지켜보면 단조롭게 보일 수도 있지만 현장에서 태권도 경기 장면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특히 태권도의 발차기는 전 세계 무술 중에서도 그 위력과 다양함에서 최고로 꼽힌다.
최근 핸드볼을 주제로 한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스키 점프 선수를 다룬 '국가대표' 등의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영화감독들이 이제 태권도에도 한번 눈을 돌려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