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현대미술가 마틴 크리드 씨의 ‘작품번호 960번’. 그는 사물을 반복적으로 배열하는 단순한 방식을 통해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결과를 주목하게 만든다. 사진 제공 사무소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영국의 현대미술작가 마틴 크리드 씨(41)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텅빈 공간에서 전등이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작업으로 2001년 영국 최고의 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세계를 두루 볼 수 있다. 얼핏 황당하게 보이는 작업이지만 전시에 맞춰 내한한 작가의 진솔한 설명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는 예술이 뭔지 잘 모른다.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삶을 흥미롭게, 더 낫게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일이다.”
예컨대 구토에 대한 영상은 인간이 생각하지 않고 창조하는 행위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궁리하다 나왔다.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하고 나면 후련하다는 점에서 창작에 대한 은유도 담겨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일 모두가 창조적 행위다. 난 단지 그것을 전시장에서 보여주기를 좋아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작업을 심오하게 포장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 그는 작품에도 제목 없이 일련번호를 매긴다. 2008년 테이트미술관에서 사람들이 30초씩 전력질주해 화제를 모았던 ‘달리기’는 850번, 현재 1020번까지 나가 있다.
생활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무것도 아닌 것, 동시에 특별한 것을 만드는 작가. 전시를 보고 나면 소소한 일상도 문득 다시 바라보고픈 생각이 든다. 삶을 더 나아지게 만드는 모든 행위와 진부하게 치부한 일상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마음. 예술이라 부르든 말든 이런 것이 우리 인생에 지문을 찍는 행위란 것을 일깨우는 전시다.
내년 2월 12일까지. 1500∼3000원. 02-733-89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