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로가 말했다. “제나라 환공이 공자 규를 죽이거늘, 소홀은 그를 따라 죽었으나 관중은 죽지 않았으니, 관중은 어질지 못하다 하지 않겠습니까?”
춘추시대 제나라는 襄公(양공) 때 정치가 혼란했다. 鮑叔牙(포숙아)는 公子인 小白을 모시고 거(거) 나라로 망명했다. 소백은 양공의 이복동생, 포숙아는 그의 傅(부)였다. 이 무렵 公孫無知(공손무지)가 양공을 살해하자 管仲과 召忽은 公子인 糾를 모시고 魯(노) 나라로 망명했다. 규는 소홀의 이복동생 혹은 이복형이라고 한다. 소백과 규는 각각 제나라로 먼저 들어가려고 싸웠는데, 소백이 이겨 제나라 군주가 되었다. 이 사람이 환공이다.
환공은 노나라 莊公(장공)에게 압력을 가해 규를 죽이게 했다.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위의 ‘召忽死之’는 ‘그를 따라 죽었다’이다. 하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포숙아의 추천으로 환공의 신하가 되어 재상에까지 올랐다. 기원전 685년의 일이다. 자로는 이 일을 거론하고 ‘曰不仁乎’라고 했다. ‘어질지 못하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뜻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