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대통령이 10일 오후 알베르토 모레노 미주개발은행 총재를 청와대로 초청해 접견한 뒤 생각에 잠겨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안이 나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친이계-친박계 갈등 심화
“방치땐 국정 흔들” 위기감
“朴 전대표측 자극 말라”
靑, 친이 의원들에 당부
세종시 수정 문제를 둘러싼 한나라당 내 친이(친이명박) 친박(친박근혜) 간 갈등이 극한 감정 대립으로 치닫자 이명박 대통령이 갈등 봉합의 해결사로 나섰다. 주호영 특임장관을 ‘메신저’로 내세웠지만 자신의 ‘뜻’을 적극 전파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엔 여권 내 세종시 갈등을 더 방치할 경우 국정 동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 또 이 대통령은 이르면 이달 안에 국민과의 대화 형식으로 세종시 문제와 관련한 평소 생각을 밝힐 계획이다. 세종시 정국의 ‘막전막후’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 이 대통령, “개선안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달라”
특히 청와대 내에서는 친박 의원들이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펼친 대정부 공격 수위가 심상치 않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한다.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10일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내분 사태로 치달을 경우 친박 진영은 사실상 ‘제1야당’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청와대에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온건 성향의 친이계 의원들이 최근 ‘세종시 출구 전략’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이들은 여당이 분열될 경우 정부의 주요 정책을 집행하는 데 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대책 마련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당 내분 수습을 위해 대통령 정무수석실은 최근 친이계 의원들에게 “박 전 대표와 친박 의원들을 자극할 수 있는 자극적인 발언을 가급적 자제해 달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날 박 전 대표를 향해 “지역주의에 기댄 정치적 사익 추구의 행태”라고 한 김용태 의원에 대해 주의를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이 대통령의 메시지 전달을 박 전 대표에 대한 ‘간접적 사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세종시 문제를 사전에 박 전 대표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친박 전체와 공감대를 형성한 뒤 추진하지 않은 데 대해 우회적으로 유감의 뜻을 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 이 대통령, 대국민 담화 검토
이 대통령은 박 전 대표의 협조를 구하면서도 세종시 정국을 정면 돌파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이달 세종시와 관련한 견해 표명에 나서는 것도 이 같은 정황을 뒷받침한다.
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하더라도 세종시 원안을 수정하게 된 데 대해 사과나 유감을 표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청와대는 밝혔다. 그 대신 이 대통령이 “(세종시의 문제점을) 내 양심상 모른 척할 수 없다”고 참모진에게 밝혀왔듯 수정안 마련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전면적인 대국민 설득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 뒤에 숨고 있다”는 비판을 불식하겠다는 의지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