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서 비관론과 낙관론의 두 국가대표가 모건스탠리의 스티븐 로치와 골드만삭스의 애비 코언이다. 1990년대 미국 증시의 대상승을 정확하게 예측해 한때 ‘애비 코언 가라사대’를 유행시킨 코언은 월가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투자전략가다. 1990년대 중반 당시 연방은행 총재인 앨런 그린스펀이 미국 증시의(겨우 4,000 선을 돌파했을 때다)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하고 나섰을 때도 코언은 과감하게 10,000 선을 주장했다. 반면 로치는 줄곧 증시의 이상 급등을 경고했다. 결과적으로 1990년대는 로치의 일방적 패배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로치의 운이 트이기 시작했다. 닷컴 버블 붕괴 이후 그의 예측에 투자가들이 점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코언은 잊혀졌다. 지난 10년의 시장을 돌아보면 로치의 보수적 견해가 옳았다. 물론 그도 다우존스가 14,000을 돌파한 2007년 10월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혹시 시장이 그의 전망과 반대로 치솟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가 얼마 전 한국에 왔다. 여전히 비관론을 내놓았다. 중국 경제의 급반등은 지속될 수 없다는 점과 미국 소비자들이 수년 동안 지갑을 열기 힘든 상황을 들면서 올해 잠시 반등했던 글로벌 경제는 다시 어려운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연한 말씀이다. 글로벌 주요 금융기관들이 보유하고 있는 부실자산 총액만 3조4000억 달러라는 추산도 있다. 그중 절반이 지난 1년 사이에 대손 처리되었지만 여전히 엄청난 규모의 부실 자산이 남아 있다. 이 정도 충격에서 1년 만에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회복에 험난한 길이 있음은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러나 비관론이 경고하는 조건들이 구체화될수록 시장이나 정부의 대응도 구체화되기 마련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더블 딥으로 빠지기 전에 ‘사전 경고성’ 비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요 20개국(G20)의 출구전략도 ‘상황의 미묘함’을 충분히 고려할 것이다. 1990년대는 낙관론이, 2000년 이후는 비관론이 지배했다. 향후 10년도 비관론이 승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한국에서도 권불십년(權不十年) 이란 말이 있다. 이론도 그렇지 않을까.
이상진 신영자산운용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