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출범
여경협 창립하자 회원사 급증
중소기업 어려움 해결에 앞장
세계진출 위한 국제활동도 박차
여성기업지원법에서 특별법인으로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여경협) 설치를 명시하면서 법적 지위를 가진 여성경제인 모임이 탄생했다. 여경협 창립을 계기로 회원사가 1000개로 늘어나는 등 조직이 활기를 띠었다. 사진은 1999년 6월 여경협 창립총회를 주재하는 장영신 회장. 사진 제공 애경그룹
이 무렵 작고한 남편을 대신해 경기 부천시에서 자동차부품업체를 운영하는 여사장 한 분이 나를 찾아왔다. 자신의 회사에서 만든 자동차부품을 현대자동차에 일부 납품하는데 좀 더 적극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지만 여성기업인이 도전하기에 벽이 너무 높다는 얘기였다. 여경협 노승현 부회장(현 대한도시가스공사 회장)과 함께 현대자동차 정세영 회장(작고)을 직접 찾아갔다. 어렵게 찾아간 자리에서 정 회장이 했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직도 생생하다.
정 회장은 “현대차에는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가 많은데 이 회사는 품질이 좋고 납품기일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우량업체다. 이런 회사를 안 키워주면 어디를 키우겠는가. 사장이 여성이어서인지 정확하고 우수하다”고 한껏 칭찬했다. 이후 이 회사는 현대자동차의 주요 협력업체가 됐고 현대차가 중국에 진출하는 데 발맞춰 중국에 공장을 설립하는 등 지금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고 하니 기쁘기 그지없다.
초대회장으로 일하면서 욕심이 있었다면 여경협이 우리나라 여성을 대표하는 경제단체로 당당하게 공인받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여성경제인 단체가 몇 곳 더 있었다. 1990년대부터 여성관련 단체가 생겼는데 한국여성경영자총연합회(1993년) 한국여성벤처협회(1998년)가 생기면서 여경협은 사안에 따라 이들 단체와 연합하거나 협력했다. 이들 여성단체와 여경협의 역할이 더러 중복되는데다 관련 예산이 분산 배정돼 비효율적인 부분도 많았다. 여경협이 예산을 지원받는 데 다른 여성단체의 불만도 있었다.
내가 여경협을 떠난 뒤에도 한국여성IT기업인협회(2001년) 21세기여성CEO연합회(2003년) 같은 여성경제인단체가 생겨났다. 통합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면 여러 분야에서 같은 목표 아래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만 해도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여경협 안에는 여러 분과를 둬 대외활동에도 박차를 가했다. 여경협 소속 기업은 영세 업체가 대부분이었지만 언젠가는 한국을 넘어 세계로 진출할 수 있을 터였다.
창립총회가 마무리된 뒤 국민을 상대로 한 공개 행사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경협은 국민의 세금을 투입하는 단체이므로 어떤 일을 하는지, 소속 기업은 어떤 제품을 생산하는지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