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교토 ‘고향의 집’ 재일동포 노인 100명 오순도순 타향살이
일본 내 4곳에 마련된 ‘고향의 집’이 재일 한국인 고령자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교토 ‘고향의 집’의 노인들이 올봄 한국인 국악인들이 찾아오자 반갑게 맞이하고 있다. 사진 제공 교토 ‘고향의 집’
14일 일본 교토(京都) 미나미(南) 구에 있는 ‘고향의 집’. 65∼98세의 재일동포 노인 100명(할머니 80명, 할아버지 20명)이 모여 사는 곳이다. 김두내 할머니(94)는 “여기 오기 전까지는 한국말도, 고향에 대한 기억도 잊고 살았다”며 말년에 되찾은 고향의 맛을 얘기했다. 20세 때 일자리를 찾아 남편과 함께 고향 부산을 떠나 교토에 정착한 김 할머니는 지난해 4월 ‘고향의 집’에 들어왔다. “고향 떠날 적엔 한글이란 걸 몰랐어. 그때는 여자는 학교 다닌다는 걸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니. 글을 모르니 말도 잊고….” 김 할머니와의 대화는 통역 없이는 불가능했지만 김 할머니는 우리말을 쓰려고 애를 썼다.
‘고향의 집’ 설립은 1984년 사망 6개월 만에 발견된 재일동포 노인의 고독한 죽음과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다는 아사히신문의 보도가 계기가 됐다. 한국계 일본인 사회사업가 윤기 씨(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와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 전 주한 일본대사 등 두 나라 오피니언 리더 500여 명이 기금 모금에 나섰다.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또는 먹고살기 위해 일본에 와야 했던 노인들 상당수가 기초연금조차 받지 못해 이국땅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 안타까운 현실에 많은 이들이 정성을 모았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산 기간이 훨씬 긴 노인들은 다다미가 깔린 온돌방에서 김치와 우메보시(梅干·매실 장아찌)를 먹으며 한국어와 일본어를 함께 쓰지만 추석 때면 한복을 입고 차례를 지낸 뒤 민요를 배운다. 교토 ‘고향의 집’ 박정미 시설장은 “일반 양로원에 적응하지 못하던 분이 이곳에 와서 ‘가나다’를 배워 한국책 읽기에 도전하는 걸 보고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11세 때 ‘먹고살기 위해’ 삼촌이 있던 교토로 건너왔다는 원금교 할머니(87)는 “‘고향의 집’에서는 고향의 냄새가 난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교토=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