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골라준 영화만 봐야 하나
5일 개봉한 영화 ‘집행자’는 11일까지 23만여 명이 관람해 개봉 첫 주 흥행 2위에 올랐다. 평일에는 2만여 명이, 주말인 7일과 8일에는 13만여 명이 몰렸다. 순제작비 10억 원과 마케팅비 9억 원을 들인 이 영화의 흥행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제작사 ‘활동사진’의 조선묵 대표는 손익분기점을 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조 대표는 이제 “기대가 아닌 기적을 바라는 중”이라고 말했다. CGV 등 멀티플렉스 극장들이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 ‘2012’가 개봉하는 12일부터 집행자를 ‘퐁당퐁당’으로 불리는 교차상영(한 스크린에 두 개 이상의 영화를 상영하는 것)하면서 하루 관객이 8000여 명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스크린은 첫째 주(247개)에 비해 6곳 줄었으나 교차상영으로 상영 횟수가 크게 줄어든 결과다. 반면 ‘2012’는 전국 650개관에서 개봉 첫날 30만 관객을 모았다.
멀티플렉스는 스크린 독과점 논란에 이어 ‘퐁당퐁당’ 상영으로 인해 흥행 가능성이 적은 영화의 상영 횟수를 줄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차상영은 극장을 찾지 못하는 작은 영화들과 다양한 영화로 명분을 갖추려는 극장 측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있다. 하지만 최근 ‘하늘과 바다’의 제작자 주호성 씨가 개봉 첫 주부터 교차상영됐다는 이유로 영화를 자진 회수했고 ‘집행자’의 배우(조재현)와 감독(최진호)은 12일 ‘교차상영 철회 촉구를 위한 긴급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조 씨는 이 자리에서 “배우가 참석하는 게 모양새가 좋지 않지만 스태프 30명의 얼굴을 생각하니 오지 않을 수 없었다”며 잠시 울먹였다.
멀티플렉스 측은 ‘퐁당퐁당’ 논란에 대해 “관객이 적게 드는 영화를 종일 걸어놓는 것은 극장 배급사 제작사 모두에 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행자’처럼 개봉 첫 주에 흥행 발판을 다진 영화도 블록버스터에 밀리는 상황을 보면 그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이다.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은 12일 열린 영진위 업무보고에서 “일정표에는 나와 있지만 관객들이 보러 갔을 때 보기 어려운 시간대에 배치된 교차상영은 일종의 불공정 사례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영진위도 교차상영의 실태를 인식하고 있는 만큼 하루빨리 대안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