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거주하는 주부 A씨는 지난 7일 전화 한 통을 받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우리가 베이징에 있는 당신 아들을 납치해 잡아두고 있으니 한 시간 내로 OO은행 계좌에 2000만원을 입금해."
조선족 말투를 쓰는 남성은 이런 말로 다짜고짜 협박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보이스피싱 사기단의 전화라며 무시하고 전화를 끊었겠지만 A씨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중국 베이징에서 유학 중인 아들 때문이었다.
A씨는 곧바로 베이징의 한 대학에서 유학 중인 아들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전원은 꺼져 있었다. A씨는 불안감에 떨면서 중국 저장성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 B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B씨도 여러 차례 전화를 했지만 아들과 통화하지 못했다. 베이징과 저장성의 거리가 멀어서 당장 학교로 찾아가 아들의 안전 여부를 확인할 수도 없었다. B씨는 고심 끝에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대사관에 신고했다.
대사관 측은 "보이스피싱일 가능성이 높으니 돈을 보내지 말고 우선 한국 경찰에 연락하라"고 당부했다. 또 대사관 측이 직접 나서서 중국 공안국에 이 같은 내용을 신고했다.
B씨는 애타는 마음을 추스르면서 아들의 대학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한 친구로부터 아들이 휴대전화를 꺼놓은 채 학교 행사에 참여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주중한국대사관의 맹훈재 영사는 "보이스피싱 사기단이 갈수록 지능화되면서 협박전화를 거는 팀과 입금된 돈을 은행에서 인출하는 팀을 따로 꾸리는 등 날로 조직화되는 추세"라며 "유학생의 신상정보를 사전에 빼돌려 부모 자식 간에 연락이 잘 닿지 않는 허점을 노린 이 같은 범죄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맹 영사는 "중국 등 해외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은 멀리 떨어져 지내는 가족과 항상 전화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며 "개인정보가 유출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