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시 노나라의 정권은 노나라 桓公(환공)의 세 후손인 孟孫氏(맹손씨) 叔孫氏(숙손씨) 季孫氏(계손씨)의 이른바 三桓(삼환)에게 있었다. 애공은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공자에게 세 가문의 대부들에게 알리라고 했다. 공자는 실망해서 “내가 대부 반열의 끄트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거늘 군주는 세 사람에게 고하라고 하는구나”라고 했다. 그러고는 세 사람에게 알렸으나 이들은 토벌의 군대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공자는 물러나와 ‘내가 대부 반열의 끄트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탄식했다.
공자는 대부의 직을 그만두었지만 노나라가 여전히 대부로 예우했으므로, 공자는 겸손하게 ‘대부 반열의 끄트머리에 있다’고 말했다. 不敢不告也는 아무래도 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공자가 삼환에게 토벌의 당위성을 말한 것은 당시 僭越(참월)의 뜻을 품었던 삼환을 責望(책망)하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기에 삼환은 불가하다고 한 듯하다. 공자는 일생 재계와 전쟁과 질병을 삼갔다. 하지만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토벌의 정당성을 역설했으니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실천 의지를 우리는 읽어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