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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以吾從大夫之後라 不敢不告也니라

입력 | 2009-11-18 03:00:00


72세의 공자는 현직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大義名分(대의명분)을 위해 憤然(분연)히 일어났다. 곧, 齊(제)나라의 陳恒(진항)이 그 군주 簡公(간공)을 시해했다는 소식을 듣고, 공자는 沐浴齋戒(목욕재계)하고는 노나라 군주 哀公(애공)을 만나, 진항을 토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항은 본디 陳(진)나라 文子의 자손인데, 그 선조가 제나라로 망명해서 田氏로 일컬었다. 이 집안은 제나라에서 세력을 키우더니, 진항이 마침내 간공을 시해한 것이다. 동맹국에 정변이 일어나면 토벌군을 내는 것이 제후들 사이의 의리였다.

하지만 당시 노나라의 정권은 노나라 桓公(환공)의 세 후손인 孟孫氏(맹손씨) 叔孫氏(숙손씨) 季孫氏(계손씨)의 이른바 三桓(삼환)에게 있었다. 애공은 스스로 결정을 하지 못하고 공자에게 세 가문의 대부들에게 알리라고 했다. 공자는 실망해서 “내가 대부 반열의 끄트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거늘 군주는 세 사람에게 고하라고 하는구나”라고 했다. 그러고는 세 사람에게 알렸으나 이들은 토벌의 군대를 낼 수 없다고 했다. 공자는 물러나와 ‘내가 대부 반열의 끄트머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탄식했다.

공자는 대부의 직을 그만두었지만 노나라가 여전히 대부로 예우했으므로, 공자는 겸손하게 ‘대부 반열의 끄트머리에 있다’고 말했다. 不敢不告也는 아무래도 고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공자가 삼환에게 토벌의 당위성을 말한 것은 당시 僭越(참월)의 뜻을 품었던 삼환을 責望(책망)하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렇기에 삼환은 불가하다고 한 듯하다. 공자는 일생 재계와 전쟁과 질병을 삼갔다. 하지만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토벌의 정당성을 역설했으니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실천 의지를 우리는 읽어내야 할 것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