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이를 선거과정에서의 정치적 언사로 간주하며 대통령 취임 후에는 여타 분야에서 보여준 탁월한 정치 역량을 발휘해 명실상부한 세계의 지도자 역할을 현명히 수행하리라 기대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정치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산적한 국내외 문제를 정면 돌파하는 대담성을 보였다. 단기적인 성과가 없어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고전하는 듯 보이나 원칙과 다수를 중시하는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공감하고 신뢰를 보낸다.
그런데 오바마 대통령이 거듭해서 기대를 저버리는 유일한 분야가 통상 문제이다. 취임 직후 미국 부동산금융 위기로 촉발된 세계경제 침체를 타결하기 위한 응급책이라는 명목하에 국산품 소비만을 강제하는 ‘바이 아메리칸’ 법안을 만들고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금지하는 보조금을 확대하여 전 세계적인 자국산업 보호주의 바람을 촉발했다. 주요 20개국(G20)을 이끌며 무역 확대를 통한 경기침체 극복을 주창하면서도 마무리 단계에 있는 WTO 도하협상을 종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리더십이나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수년 전에 끝난 콜롬비아 파나마 한국과의 FTA 비준은 시도도 하지 않았다.
현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통상체제의 국면을 전환시킬 최선의 방안이 한미 FTA 비준이다. 경제적인 규모로 보나 정치안보적 중요성으로 보나 쉽게 다룰 사안이 아니다. 그런 만큼 한미 FTA 비준은 보호주의 일색의 통상정책을 밀어붙인 오명과 우려를 불식할 최선의 기회다. 또 WTO 도하협상이 지연되면서 미국이 대규모 교역국과 실질적인 FTA 대안을 활용한다는 중대한 신호가 되므로 도하협상 재촉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아태자유무역지대 구축과 같은 선언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현실적인 정책대안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도 한미 FTA는 우선적으로 발효시켜야 한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아시아 시장의 핵심적인 교두보를 두고 유럽연합(EU)과의 경쟁에서 선점의 실리를 챙길 수 있다. EU도 이미 한국과 FTA를 체결했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한미 FTA를 기초로 했으므로 발효가 늦어지면 EU에 실질적인 혜택을 넘긴다. 조만간 한-EU FTA가 발효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넘겨준 공적을 오바마 대통령이 날려 버렸다는 비난을 감내해야 할지 모른다. 스마트파워 외교의 진수를 보이며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통상체제에서도 결단을 보여주기 바란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