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성시 서운면 신흥정밀 공장에서 직원이 프레스 기기 앞에서 삼성전자의 액정표시장치(LCD) TV에 들어갈 철판 프레임을 점검하고 있다. 이 프레임은 신흥정밀이 혁신적인 방법으로 원가를 절감한 사례로 꼽힌다. 안성=김유영 기자
과거 백색가전 부품 국산화 선봉… 소니-후지쓰 등 日에도 입소문
최근 LCD패널 프레임 제작 혁신… 삼성제품 원가절감 기여 ‘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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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출발한 신흥정밀은 지난해 매출 1조3000억 원에 중국 등 7개국에 15개 사업장을 거느린 글로벌 기업으로 컸다.
신흥정밀이 삼성전자와 첫 거래를 시작한 1972년은 한국의 전자산업이 막 태동했던 때다. 당시 신흥정밀은 미국 제니스의 라디오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생산하던 삼성전자에 라디오 부품을 납품했다.
1990년대 들어서 삼성전자는 해외 진출을 본격화했다. 신흥정밀도 국내 생산에만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에 신흥정밀의 첫 깃대를 꽂았다. 당시 잘나가는 전화기 제조사인 맥슨전자의 공장을 따라서 진출했다. 맥슨전자가 쇠락해 신흥정밀도 잠시 휘청였지만 삼성전자가 태국에 진출하면서 부품 공급업체로 신흥정밀을 택했다. 신흥정밀의 ‘내공’을 높이 샀기 때문. 신흥정밀은 이후 삼성전자가 진출하는 곳마다 함께 진출했다. 해외 사업장에서 현지 납품하는 비율은 신흥정밀의 수출액으로 잡혔다. 신흥정밀은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에서 ‘5000만 불 수출탑’(1996년), ‘1억 불 수출탑’(2002년) 등을 연달아 탔다.
경기 안성시 서운면 신흥정밀 공장에서는 이 프레임을 만드는 데 3.8초밖에 안 걸린다. 프레스 기기가 철판을 네 조각으로 나눠 스테이플러로 찍듯 철판을 접합하면 프레임이 완성된다. 기존에는 큰 직사각형 철판에서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철판을 떼어내 프레임을 만들어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철판은 버려야 했다. 버리는 철판이 80% 이상이었다. 사고의 전환을 통해 버려지는 철판이 아예 없도록 한 것이다. 기술적으로 네 조각의 철판을 프레스로 눌러서 프레임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아 4년을 매달린 끝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삼성전자 일부에서도 ‘LCD 패널 가격이 충분히 높아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이후 LCD 패널 가격은 하락했고 이런 제조법은 원가 절감에 기여했다.
신흥정밀이 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중국의 저가 공세와 원화 강세, 원자재가격 인상 등 악재가 겹치며 창사 이래 큰 위기를 맞았다. 신흥정밀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는 한편 금형 사출 이외의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야 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금과 전문 인력.
삼성전자에 ‘SOS’를 요청했다. 삼성전자는 흔쾌히 사업자금 20억여 원을 지원했고, 삼성전자 직원 3명까지 보내줬다. 삼성전자 직원은 1년 가까이 신흥정밀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그 결과 신흥정밀의 새로운 사업 분야로 레이저 프린터의 핵심 부품인 ‘고정밀 광학렌즈’ 분야를 선정했다. 신흥정밀의 사출 기술로 플라스틱을 정밀하게 깎아 렌즈를 만들 수 있다는 것. 현재 신흥정밀은 삼성전자 프린터사업부에 이 렌즈를 납품하고 있다.
안성=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