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국립공원 계룡산. 트레커 29명이 탐방로에 일렬로 줄지어 산을 오르고 있다. 대부분 양손에 스틱을 잡고 걷는데 그 걸음은 전혀 서두름 없이 또박또박, 속도도 일정하다. 뒤따르던 등산객이 여유작작한 그 느린 행보에 짜증 났던지 냉큼 잰걸음으로 추월한다.
그때 이런 말이 들린다. “천천히, 보폭은 짧게, 속도는 일정하게, 디딜 때는 낮은 곳을….” 두 남녀가 대열 중간에서 지도하는 내용이다. 또 다른 이는 스틱 잡는 자세를 고쳐준다. 이들은 등반객과 가이드가 아니다. ‘찾아가는 트레킹스쿨’의 수석강사 김기선 김신덕 씨와 교장 윤치술 씨다. 그리고 일행은 수강생이다. 트레킹스쿨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건강한 산행문화 보급을 위해 올해 처음 만들어 대한산악연맹을 통해 전액 지원하는 무료 프로그램이다.
“자동차와 같습니다. 오르막을 힘 좋은 저속기어로 천천히 오르는 원리가요.” 윤 교장의 설명이다. 산을 오른 지 한 시간. 평소라면 벌써 한 번쯤 휴식했을 터인데 오늘은 다르다. 내내 쉼 없이 트레킹에 열중한다. “천천히 오르니 쉴 필요가 없네요. 힘이 안 드는 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40대 중반의 한 여성 트레커의 말이다.
트레킹과 등산, 과연 그 차이란. 윤 교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저는 ‘속도론’으로 설명합니다. 등산이 100m를 10초에 주파하는 것이라면 트레킹은 50초쯤이지요.” 그가 펴낸 ‘찾아가는 트레킹교실’ 책자의 정의는 이렇다. ‘가벼운 배낭을 메고 여유롭게 산길을 걸으며 자연 풍광을 감상하는 산행.’
느림의 미학. 그 진가는 마음의 여유다. “느리게 걷다 보니 빨리 걸을 때 지나쳤던 것을 두루 보게 되네요. 가수 김광석의 노랫말을 생각나게 하는 나목 가지 위의 흐린 가을하늘, 숲 속에서 마지막 꽃을 피우느라 애쓰는 들꽃, 도토리 줍느라 몹시도 바쁜 다람쥐, 바람 한 점에도 우수수 비 되어 쏟아지는 낙엽 같은 자연 말이지요.” 한 50대 초반 여성 참가자의 말. 그러면서 이렇게 되뇐다. “지금까지 왜 그리 후닥닥 빨리만 올라가려고 했는지, 참….”
윤 교장 팀은 손목에 스틱의 밴드를 걸어 손잡이를 쥐지 않고도 무릎에 걸리는 체중을 팔을 통해 상체로 분산시키는 스틱 사용법을 하산하는 한 시간 내내 연습시킨다. 그 중간에는 뮤직 세러피 시간도 갖는다. 이것은 낙엽이 오붓이 쌓인 쉼터에 털썩 주저앉아 윤 교장이 하모니카와 동시에 연주하는 우크렐레(아주 작은 기타 모양의 악기)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명상하는 순서. 이 ‘깜짝쇼’야말로 이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다.
하산 후엔 국립공원사무소에서 산악지도 읽는 법과 위치확인 방법도 가르친다. 그리고 몸 푸는 체조로 트레킹 실습을 마친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귀경버스는 다시 교실이 되고, 게서 시험을 치른다. 배운 내용을 점검하는 순서. 그리고 이어지는 졸업식. 수료증도 받고 졸업가도 부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버스는 수도권에 진입하고 곧 퇴근 인파로 북적대는 양재역에 닿는다. 이때가 오후 7시 반. 12시간 트레킹 교육이 모두 끝나는 순간이다.
글·사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안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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