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여성그룹 원더걸스 그리고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나열이지만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세계 100위’의 장벽을 뛰어넘은 국내 대표 주자라는 것이다. 서울대는 ‘2009년 세계대학평가’에서 47위에 올랐고 원더걸스는 대표곡 ‘노바디(Nobody)’를 통해 국내 가수로는 처음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핫(HOT) 100’에 76위로 진입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역시 미국의 유력 금융 잡지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가 선정한 ‘2009년 세계 100대 베스트 호텔’ 가운데 78위에 올랐다. ‘세계 100위 진입’은 여러 분야에서 대단한 성과로 평가된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도 올해를 포함해 4년 연속 세계 100위 호텔에 포함됐다는 사실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국내 ‘최고(最古)이자 최고(最高) 호텔’이라는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숙박객 1인 평균 객실료는 서울의 특급 5성 호텔 가운데 가장 높다. 고급 객실을 많이 쓰거나 1인 비즈니스 고객이 많다는 뜻이다. 최홍성 대표이사(60)는 “수많은 경쟁 호텔이 있는데도 요금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차별화한 서비스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것이 ‘익스프레스 체크인 서비스’다. 공항에서 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아 현장에서 바로 체크인이 가능하도록 해 호텔에 도착해선 별도의 과정 없이 바로 투숙할 수 있는 서비스다. ‘고객’을 맞는 장소를 호텔 입구가 아닌 공항까지 연장한 셈이다.
‘스마일 & 코사서비스’도 독특하다. 코사(COSA)는 ‘Chosun One Step Ahead Service’의 약자로 호텔 직원들이 고객의 표정과 태도, 분위기를 통해 마음을 읽어내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 미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호텔 측은 이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전 직원이 경험하는 코사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객실 자랑도 빼 놓을 수 없다. 2007년 2월 리노베이션을 완료한 객실 453실에는 모두 디지털 TV인포메이션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 서비스를 통해 고객은 원하는 호텔 서비스, 비행기 예약, 관광정보 등을 리모컨 하나로 해결할 수 있으며 체크아웃도 가능하다. 또 비즈니스에 필수적인 휴대전화가 방마다 비치돼 있다. 별도의 임차료 없이 통화료만 내면 된다. 고객의 건강을 위해 항알레르기 카펫을 깔았고 네 가지 맛의 캡슐형 원두와 에스프레소 커피메이커도 마련해 뒀으며 8개국 언어 50개 채널이 방영되는 TV도 갖춰 놓는 등 세밀한 배려가 두드러진다. 이외에도 고객 맞춤형 객실로 실내에서 운동을 할 수 있는 ‘이그제큐티브 웨스틴 워크아웃룸’이나 가족들을 위해 더블침대 1개와 싱글침대 1개를 비치한 ‘패밀리룸’도 있다.
이런 차별화된 서비스의 바탕에는 ‘원조’로서의 자존심이 깔려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기네스북이 인정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1914년 일본의 조선총독부 산하 철도국이 지었고, 처음에는 이름이 일본식 발음인 ‘조선호테루’였다. 호텔이 건립된 장소는 조선의 왕들이 천신에게 제를 지내던 ‘환구단’ 터로, 고종 황제의 즉위식이 열리기도 했던 명당이다. 일제가 이 호텔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는 단적인 예다. 개관 당시부터 엘리베이터(당시에는 수직열차)와 아이스크림, 뷔페, 댄스파티, 서구식 결혼식 등 많은 서양 문화를 국내에 처음 들여와 ‘개화의 일등 공신’으로 평가받았다.
일본 정부의 소유였던 이 호텔은 1945년 광복을 맞아 이름을 ‘조선호텔’로 바꿨고 소유권은 1948년 교통부를 거쳐 1963년에는 한국관광공사로 넘어가게 된다. 관광공사는 세계적 호텔을 만들기 위해 1967년 외국 자본과 합작 투자를 이끌어 냈고 이어 1979년 외국인투자가가 세계적 호텔 체인인 ‘웨스틴인터내셔널호텔’로 바뀌면서 호텔 명칭도 현재의 서울 웨스틴조선호텔로 변경됐다.
관광공사가 가지고 있던 주식을 정부투자기관의 민영화 추세에 따라 1983년 삼성그룹이 인수했고, 1992년 삼성에서 분리된 신세계가 다시 주식을 넘겨받았다. 1995년에는 신세계가 웨스틴인터내셔널호텔이 가지고 있던 주식을 완전히 인수함으로써 이제는 순수 국내자본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삼성에스원 전무 출신인 최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여동생인 정유경 상무(37)가 오너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호텔 성공 열쇠는 인재” 작년 6억9000만원 교육비 투자
최 대표이사는 “호텔의 핵심은 서비스이고, 서비스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호텔 성공의 열쇠는 인재를 양성하고 제대로 배치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지난해 6억9000만 원을 직원 교육비로 투자했다. 이는 서울의 다른 특급호텔인 A호텔(6억 원), B호텔(2억7000만 원), C호텔(2억2000만 원)과 비교할 때 많은 액수다.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스터디 그룹’에 회사가 비용을 지원해 주는 시스템도 갖춰져 있다. 1년 동안 가장 우수한 활동을 보인 학습조직을 뽑아 해외 연수도 시켜준다. 최근엔 레스토랑 ‘홍연’의 중국 차(茶) 연구팀이 중국 상하이를 다녀왔고, 다른 팀들은 일본 이탈리아 등으로 벤치마킹을 다녀왔다. 뷔페식당 아리아의 ‘복분자 주’, 홍연의 ‘다식’ 등 이런 학습의 결과로 개발된 상품을 바로 고객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현재 403명이 참여해 총 108개의 학습조직이 있으며, 와인 사케 연구부터 ‘미술 분야 학습 및 호텔 내 미술 작품 연구’ ‘객실 정비 및 데커레이션’ ‘보이스(voice) 트레이닝’ 등 분야도 다양하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의 성공은 이처럼 끊임없는 혁신과 과감한 투자, 수준 높은 직원 교육 등 3박자가 잘 어우러진 결과로 평가받고 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이 운영하는 델리 카페 ‘베키아에누보’는 우리나라에 ‘델리 문화’를 처음으로 들여와 확산시킨 주역으로 꼽힌다. 현재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 6개 매장이 있다. 사진 제공 웨스틴조선호텔
한국에 델리문화 퍼뜨린 ‘베키아에누보’ 경영
작년 개점 ‘패이야드’는 디저트카페 열풍 진원지
신세계가 경영을 맡으면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은 사업 다각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외식사업 분야. 80년 이상 쌓아온 식음료 서비스에 대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6년 국내 호텔업계 최초로 김포공항 식당가에 진출한 뒤 지속적으로 이 분야를 확장하고 있다.
이 호텔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와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의 대규모 연회 사업을 모두 전담하고 있다. 2000년에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연회를 진행하기도 하는 등 그 실력과 노하우를 인정받기도 했다.
각종 레스토랑도 계속 늘려가고 있다. 한국에 ‘델리 문화’를 들여온 것으로 유명한 ‘베키아에누보’는 현재 서울과 부산 웨스틴조선호텔점, 서울 청담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강남점 부산센텀시티점 등 총 6개 매장이 있다. 베이커리 샌드위치 파스타 등을 간단하게 즐길 수 있으며 테이크아웃도 가능하다.
코엑스 컨벤션센터 2층의 ‘비즈바즈’는 중식 일식 양식 등 100가지가 넘는 메뉴를 선보이는 프리미엄 뷔페 레스토랑이며, 코엑스 컨벤션센터 1층의 ‘오킴스브로이하우스’는 우리나라 최초의 하우스 맥주 전문점이다. 같은 장소에 있는 ‘조선델리’는 삼성동 인근 직장인들이 음료와 샌드위치 등 간단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 중구 명동의 은행회관 16층에 있는 ‘뱅커스클럽’은 주말 돌잔치나 웨딩 피로연 장소로 인기가 있다.
미국 뉴욕에서 가장 맛있는 페이스트리로 유명한 ‘패이야드’는 지난해 3월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을 통해 국내에 상륙했다. 이후 한국에 ‘디저트카페’ 열풍을 불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경우 패이야드 옆에 있는 신세계VIP 전용 라운지인 ‘트리니티 라운지’의 방문객 수가 패이야드 오픈 전에는 월 2500명이었다가 개점 이후 4000여 명으로 증가하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