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후인 온천 마을의 골목. DBR 사진
대규모 개발 대신 전통 - 자연 보전
한해 400만명 관광 오는 명소로
일본 규슈의 유후인(由布院)은 근래 한국인에게 각광받기 시작한 온천 마을 관광지다. 그동안 한국 관광객들이 주로 찾던 벳푸가 왁자지껄한 대중 관광지라면 근처의 유후인은 조용한 고급 온천 관광지다. 유후인을 찾는 이가 많아진 것을 보면 한국인의 관광 취향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바로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쾌적함과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곳에 대한 선호다.
유후인의 인구는 1만2000명으로 한국의 읍 소재지보다 적다. 그런데도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연간 400만 명에 이른다. 1000m 이상의 고산준령에 둘러싸인 유후인의 주변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는 하나 일본의 여느 명승지와 비교해 압도적이지는 않다. 온천 외에 딱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유후인으로 향한다.
유후인에는 현대식 관광호텔도, 사람과 자연을 윽박지르는 위압적인 건물도 없다. 마을 중심지는 옛 골목길 그대로다. 그 흔한 술집도 눈에 띄지 않는다. 불현듯 ‘아, 여기가 시골마을이지’라며 오감으로 느끼는 그런 곳이다. 사람들은 잃어버린 옛 모습과 정취를 좇아 이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유후인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지만 오늘날의 유후인을 만들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은 이미 50년 전에 시작됐다. 이 마을은 원래 눈이 오면 자주 고립되는 가난한 시골마을이었다. 더구나 지진으로 큰 어려움까지 겪게 됐다.
마을사람들은 재건을 위해 삽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개발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가득 찬 도시를 모방하지 않고 ‘삶의 질’을 선택했다. 한때 풍부한 물과 온천을 놓고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가 구상되면서 마을사람들이 찬반으로 분열된 적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개발과 보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속에서 전통과 자연을 지켜낸 노력이 오늘날의 유후인을 만들었다.
후쿠오카와 유후인을 연결하는 ‘유후인노모리(由布院の森)’ 특급열차. 이 열차는 ‘유후인의 숲’이란 이름에 걸맞게 아름드리나무로 둘러싸인 원시림을 가로지르며 내달린다. 객실이 운전석보다 높아서 전망도 탁 트였다. DBR 사진
유후인 사람들은 적절한 규모의 관광객이 최고의 만족을 느끼도록 만드는 절제의 미학(美學)으로 마을을 개발했다. 차분하고 호젓한 분위기의 유후인은 가족, 여성 관광객을 위한 여행지로 제격이다.
유후인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산역사로 불리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다. 그는 이 마을을 매우 좋아했다. ‘이웃집 토토로’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그의 대표작들이 유후인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요즘 국내에서도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유후인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건축 시설물 등 가시적인 성과와 무조건 관광객을 많이 유치하는 것에 개발의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 대신 절제하는 마케팅과 쾌적한 고급 이미지로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는 개발에 힘써야 한다. 과도하지 않고 절제하는 마케팅, 즉 ‘디마케팅(demarketing)’이 유후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 mjkim896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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