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사서 투자상품 임의로 바꿔 214명 61억원 피해서울지법, 전액책임 첫 인정… 6개월전 판결 뒤집어
주가연계펀드(ELF)에 투자했다가 운용사가 파생상품 거래 업체를 임의로 바꾸는 바람에 손실을 입은 개인 투자자들에게 “운용사 측이 손실을 100% 배상하라”는 이례적인 1심 판결이 나왔다. 올해 5월 같은 법원 다른 재판부가 똑같은 소송에서 정반대의 결론을 내린 바 있어 ‘투자 손실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대한 법적 판단은 결국 상급심에서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임범석)는 ELF에 투자했다 투자금을 모두 날린 강모 씨 등 214명이 “투자금을 돌려 달라”며 낸 소송에서 “펀드 운용사인 우리자산운용과 수탁사인 하나은행은 투자자 손실의 100%를 배상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배상액수가 무려 61억 원에 달해 유사 소송의 배상액 가운데 가장 크다.
강 씨 등은 2007년 6월 우리자산운용의 ELF인 ‘우리투스타파생상품KW-8호’가 해외 금융사인 BNP파리바운용이 발행하는 장외파생상품(ELS)에 투자하는 상품으로 알고 투자했다. 당초 우리자산운용은 200억 원을 모집하려 했지만 펀드투자 열풍으로 KW-8호는 980여 명에게 284억 원어치나 팔렸고 투자규모가 커지자 BNP파리바 측은 운용을 거절했다. 이에 따라 우리자산운용은 비슷한 신용등급에, 비슷한 운용 능력이 있는 해외 자산운용사인 미국 리먼브러더스로 운용사를 바꿨다. 얼마 뒤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고 강 씨 등은 투자금을 모두 날리게 됐다.
KW-8호에 대해선 이 소송을 포함해 현재까지 3건의 소송이 제기된 상태다. 이 가운데 일부 투자자들이 낸 똑같은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부장판사 정호건)는 올해 5월 “운용사 등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다른 결론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최초 투자설명서에 거래 상대를 임의로 변경하지 못한다는 명시적인 제한 내용은 없다”며 “높은 투자수익을 위해서라면 운용사가 일정한 제한 아래 거래 상대를 임의로 변경할 재량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자산운용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항소할 뜻을 밝혔다. 우리자산운용 이정철 사장은 “똑같은 재판에서 서로 다른 판결이 나와 당혹스럽다”며 “파산 직전까지 A등급을 유지한 리먼이 파산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잘못한 부분은 당연히 책임지겠지만 잘못 여부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끝까지 다퉈보겠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율촌 조상욱 변호사는 “해외 운용사가 바뀐 사실을 금융투자협회 홈페이지에 공시하고 투자설명서에도 명기해 투자자의 집에 배달했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