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영입해 조직 새바람분쟁조정서 내부감찰까지기업 핵심 업무 맡아 위상 쑥5년전 5배 450명 맹활약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사내 변호사인 정재훈 씨(45)는 얼마 전 국내 한 수사기관으로부터 간첩사건에 연루된 인사의 e메일 내용을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정 씨는 미국 본사 등과 논의한 끝에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회사를 대표해 수사에 협조했다.
1990년대만 해도 사내 변호사는 변호사업계의 본류와는 거리가 먼 소외된 집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역할과 위상이 180도 달라졌다. 이남권 서울지방변호사회 사내변호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은 “5년 전만 해도 국내의 사내 변호사는 100여 명도 채 안 됐지만 해마다 크게 늘어 올해 6월 말 집계 결과 450여 명으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법원과 검찰의 고위직 출신 ‘대어(大魚)’들이 대기업 임원으로 영입된 것도 사내 변호사의 위상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 올해 초 KT에 영입된 정성복 윤리경영실장(55·부사장)은 검사 출신답게 내부 비리를 잇달아 적발하면서 조직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출신 윤진원 SK 부사장(45)도 1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최태원 회장의 비서실장으로 발탁됐다. 판사 출신인 김상헌 NHN 대표(46)와 정유업계 최초 여성 임원인 강선희 SK에너지 전무(44) 등도 기업의 핵심 업무를 맡고 있다. 사내 변호사의 규모가 커지면서 최근 서울 강남(회원 72명)과 강북(107명), 여의도(100명)에 각각 사내변호사회가 처음으로 조직됐다.
그러나 사내 변호사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일부 사내 변호사는 여전히 경영진의 탈법행위를 돕는 역할에 안주하고 있다”며 “사시 출신이라는 우월감 때문에 기업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업무 협조도 잘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현 서울변호사회장은 “양질의 법조인들이 사내 변호사로 대거 진출하면서 사내외 분쟁과 거래상의 마찰을 사전에 해결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며 “상장 기업에 준법지원인(법조인)을 의무적으로 두고 기업 내부의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