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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제뉴스]‘불황형 흑자’가 무슨 뜻인가요

입력 | 2009-11-25 03:00:00

요즘 신문에서 ‘불황형 흑자’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던데요. 어떤 뜻인가요?

경기 침체기 수출보다 수입 더 줄면서 흑자 발생
소극적 투자-소비 탓… 최근 들어 사라지는 조짐




《30일은 ‘제46회 무역의 날’입니다. 1948년 수출 1900만 달러로 세계 100위였던 한국은 꼭 60년 만인 지난해 수출 4220억 달러로 세계 12위의 무역 강국이 됐습니다. 수출품도 철광석, 가발, 합판 등에서 휴대전화, 선박 등으로 진화했죠. 최근 경기침체로 다소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한국의 수출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정상에 근접해 있습니다. 앞으로 3주 동안 ‘아하, 경제뉴스’에서는 한국무역협회와 공동으로 무역에 대한 여러분의 궁금증을 풀어드리려고 합니다. 동시에 한국 무역의 현재 위치, 강점과 약점,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한국의 경상수지는 9월 말까지 322억2000만 달러의 누적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 139억3000만 달러의 누적 적자를 낸 것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좀 이르긴 하지만 올해 경상수지 흑자 폭이 사상 최대를 기록할 거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지난해 발생한 금융위기가 올해 최악의 경기침체로 이어졌음에도 흑자가 이렇게 많이 나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불황형 흑자’의 전형적인 예라고 설명합니다. 불황형 흑자는 경기가 침체됐을 때 수입이 수출보다 크게 감소하면서 흑자가 늘어나는 현상을 말하죠. 가계 경제로 비유하자면 연봉은 줄었지만 쓰임새를 줄여서 저축액이 많은 상태로 볼 수 있습니다.

수출입 현황을 들여다보면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올해 10월까지 한국의 수출은 294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7%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수입은 2603억 달러로 31.5%나 줄었죠. 불황이 한창이던 6월에는 수출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12.6% 줄었지만, 수입은 32.3%나 감소하면서 월간으로 사상 최대인 69억5800만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냈습니다.

수입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먼저 경기악화로 수요가 감소하면서 국제유가가 하락했습니다. 지난해 배럴당 150달러에 육박하던 원유가 최근 70∼80달러로 내렸죠. 전체 수입의 15∼20%를 차지하는 원유 가격이 지난해 대비 40% 이상 하락하면서 수입금액이 줄어든 것입니다.

경기전망이 불확실해지면서 기업이 투자를 줄인 것도 수입 감소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설비투자에 필요한 기계, 정밀기기 등 자본재 수입은 올 들어 10월까지 전년 대비 21.6% 감소했죠.

지갑이 얇아진 데다 상반기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가치는 하락)하면서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자 국민들도 씀씀이를 줄였습니다. 가전제품, 자동차, 골프용품 등 소비재의 수입 실적이 크게 줄었죠.

한편 수출은 감소했지만 수입만큼 크게 줄지는 않았습니다. 해외 수요가 다소 위축됐지만 원유 가격이 하락한 데다, 원화가치가 하락하면서 한국산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덕분이었죠.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도 한국은 불황형 흑자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기업들이 문을 닫고 가계소비가 줄면서 수입이 전년 대비 35.5% 급감했습니다. 수출은 2.8% 줄어드는 데 그쳐 사상 최대인 390억3000만 달러의 무역흑자를 냈죠. 올해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 등 일부 신흥국에서도 불황형 흑자가 관측되고 있습니다.

흑자라고는 해도 불황형 흑자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출기업과 수입업체의 수익이 동시에 감소하면서 전반적인 기업 매출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죠. 기업 매출이 감소하면 신규 투자와 일자리도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가 원화가치를 상승시켜 한국 상품의 경쟁력을 낮추고 물가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불황형 흑자가 점차 사라지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근 관세청에서 발표한 ‘11월 1∼20일 수출입동향’을 보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8.8% 증가하고 수입은 2.1% 감소하는 데 그쳤습니다.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와 동유럽 신흥국을 중심으로 해외 수요가 살아난 덕분에 반도체, 선박 등 한국의 주요 수출품 수출이 늘고 있는 것이죠. 기업들이 발 빠르게 투자에 나서면서 자본재 수입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대로라면 11월에는 1년 1개월 만에 전년 동월 대비 수출 증가율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됩니다. 지난해 11월이 금융위기 직후여서 기저효과가 다소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불황형 흑자는 언제 끝날까요? 사실 ‘불황형 흑자’라는 단어는 학문적인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언제 끝나는지 딱 잘라 말하기가 곤란하긴 합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년 동월 대비 수출이 증가할 때 △수출과 수입이 모두 증가세로 돌아설 때 등 의견이 분분하죠.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제현정 수석연구원은 “자본재 및 소비재 수입액과 원자재 수입물량이 11월에 증가세로 반전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추세가 당분간 유지된다면 ‘불황형 흑자’가 끝났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조만간 전문가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불황형 흑자라는 말이 쓰이지 않게 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봅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