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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다이어리] 야구장서 배운 재활기술 축구장서 꽃피다

입력 | 2009-11-26 07:00:00

전남 박종건 트레이너



전남 박종건 트레이너. 스포츠동아 DB


1995년 전남 드래곤즈 창단과 함께 박종건(44·사진) 트레이너는 광양 땅을 밟았습니다. 1989년부터 삼성 라이온즈 프로 야구단에서 일해 왔던 그는 아주 단순(?)한 이유로 종목을 바꿨습니다. 야구는 대표팀이 소집되면 트레이너 등 지원 스태프가 각 구단에서 차출됩니다. 전남의 제의를 받고는 ‘잘 하면 월드컵도 따라갈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덜컥 허락을 한 거죠. 그러나 이게 웬걸. 축구대표팀은 코칭스태프 뿐 아니라 지원스태프도 전담체제입니다. A매치가 야구에 비해 훨씬 활성화돼 있기 때문이죠.

이렇게 묘한 이유로 맺어진 전남과의 인연이 14년째 이어졌습니다. 처음 축구단에 왔을 때 광경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십자인대 파열로 수술을 한 김상호(강원FC 코치), 박창현(포항 코치), 발목을 다친 김도근(전남 코치)이 웨이트 장에 한데 모여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더랍니다. 재활의 개념 자체가 생소한 ‘운동은 열심히 하는 게 장땡이다’는 시절이었죠.

박 트레이너는 즉각 구단에 건의해 근력운동, 보조운동기구를 들여왔습니다. 축구단에 재활기구가 처음 설치된 게 이 무렵이라고 하니 그가 과학적 재활 시스템의 전도사격이었던 셈이죠. 야구단에서 일하던 시절 미국 등지를 다니며 선진 재활기법을 공부하고 지인들을 알아놨던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김도근에게는 대구의 전문 재활센터를 소개해줬으니까요.

대부분이 그렇듯 그도 매년 시즌이 끝나면 구단과 1년 계약을 하는 계약직 직원입니다. 많지 않은 연봉과 고된 노동이 수반되는 이 일을 20년 이상 해 올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대답이 걸작입니다. 자신을 ‘사무국 최후의 보루’라고 표현하네요. 구단이 회사라면 선수는 자산이겠죠. 그리고 트레이너는 자산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사무국의 일원이라는 겁니다. 이런 자부심이 그를 버텨오게 만든 힘일 겁니다. 어느덧 각 구단 트레이너 가운데 최고참급에 속하게 된 그는 이제 축구단 밖으로 나가 어려운 사람들의 재활치료 등을 도우며 봉사활동을 하는 제 2의 인생을 꿈꾸고 있습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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