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입맛 유혹하는 日 본토 요리
“사케 한 잔?” 컴퓨터 모니터 위로 깜박이는 동료의 메신저 한 줄 문자는 막 데워진 술처럼 따뜻했다. 더위에 지친 한여름 밤, 맥주 한 잔이 주는 위안처럼.
늦은 저녁 동료를 따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앞 거리로 나섰다. 펑키한 차림의 젊음과 말쑥한 정장의 연륜이 뒤섞인 거리는 히라가나와 한자가 뒤엉킨 간판과 홍등으로 물결을 이뤘다. “젊은 사람들 모이는 거리마다 일본식 음식점들이 즐비해. 선술집 이자카야, 라멘, 벤또, 일본식 카레까지….” 동료의 설명이 아니어도 어느새 ‘라면’보다 ‘라멘’이, ‘덮밥’보다 ‘돈부리’가 입에 익숙한 요즘이다.
달콤한 숯불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골목의 이자카야 ‘남산’. 100m² 남짓한 공간에 50여 개의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 훈훈한 온기가 가득했다. “술 생각나고 맛있는 안주가 먹고싶을 때 찾아요. 일식집은 너무 정색하는 듯한 분위기고 가격도 부담스럽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이자카야를 찾는다는 은행원 김영주 씨(30). “굳이 도쿄가 아니더라도 요즘 트렌드인 일본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죠.” 스타일리시한 이자카야의 매력이 좋다는 구두 디자이너 정인영 씨(29·여). 이들처럼 분위기와 실속을 찾아 온 20, 30대가 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곳 사장 허은진 씨(30)는 “불과 1∼2년 전만해도 일본 선술집의 분위기만 흉내 낸 곳이 많았지만, 요즘은 제대로 된 본토 맛을 내다보니 반짝 인기에 그칠 뻔했던 이자카야 붐이 계속되고 있다”라며 인기 요인을 짚었다.
홍익대 앞 거리에만 40곳이 넘는 이자카야가 생겨났는데 그중에는 아예 일본에서 건너 온 가게도 있다. 일본에 본사를 둔 철판요리 전문점 ‘텟펜’이 대표적이다. 문을 열면 전 직원이 우렁찬 구호로 손님을 맞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경쾌하다. 맛만큼이나 조리사들의 수려한 외모로도 입소문이 난 곳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문타로’도 일본 본토의 꼬치구이를 맛볼 수 있는 야키도리(꼬치) 전문점이다. 많은 곳이 양념된 냉동 닭꼬치를 사용하는 데 반해 매일 직접 손질한 야키도리를 내놓는다. 닭 껍질, 대동맥 같은 특수 부위도 이곳에선 별미가 된다.
용산구 남영동의 ‘쯔꾸시’는 서울에서 가장 일본적인 이자카야로 유명하다. 매일 50개씩만 만들어내는 튀김류와 해물이 듬뿍 들어간 나가사키짬뽕이 대표 메뉴. 일본 명주 리스트도 100여 종이 넘는데 가격대는 낮지 않다.
이자카야로 시작된 일본 요리의 인기는 돈부리(덮밥), 라멘, 벤또(도시락), 카레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요리는 카레. 커리드 라이스의 일본식 표현인 카레의 메뉴 개발에 대형 외식업체들까지 나서고 있다.
전국에 체인을 둔 ‘오므토다이닝’의 카레는 10시간 동안 우려낸 육수에 35가지 향신료와 야채, 고기 등을 넣어 깊고 진한 일본식 카레 맛을 자랑한다. 특히 돌솥 소재의 식기에 담아내기 때문에 따뜻한 온기를 30분 이상 유지시킨다. 또 매운맛을 5단계로 나눠 입맛에 맞게 선택할 수 있다.
홍익대 앞에 위치한 ‘아비꼬’는 줄 서서 먹는 카레집으로 유명하다. 카레라이스, 카레우동, 하이라이스 중 메뉴를 고르면 카레 종류(포크, 치킨, 버섯, 비프, 해산물)와 매운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 기본 카레 국물에 자체 배합한 향신료를 더해 매운 정도를 조절하는데, 맵지 않은 아기 단계부터 신(神) 단계까지 다양하다.
이 밖에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위치한 ‘노다보울’에서는 일식을 바탕으로 한 퓨전 덮밥을 맛볼 수 있고, 홍대 앞의 이름난 덮밥집 ‘오자와’에서는 일본인 주인이 본토의 맛을 내놓는다. 라멘 전문점 ‘멘무샤’에서는 정통 라멘에서부터 한국인에 입맛에 맞춘 한국형 라멘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