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져서…’는 이 작가가 30년 전에 쓴 작품이지만 등장인물이 30여 명에 이르는 대작이어서 지금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배우 전무송이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경기도립극단을 만나 무대에 오르게 됐다.
배경은 일제강점기 말 목포 인근의 작은 섬마을 갈매도. 평온한 시간이 흘러가던 어촌마을에 어느 날 일본 형사가 들이닥쳐 숨겨둔 군자금을 찾는다는 이유로 조상들의 묘를 파헤친다. 사람들은 몸이 불편하지만 마음씨 좋은 광수를 제주(祭主)로 정해 조상의 원혼을 달래는 당제(堂祭)를 지낸다. 하지만 어선이 난파해 어부들이 목숨을 잃는 등 우환이 생기자 사람들은 광수에게 책임을 돌린다. “왜 다리빙신을 제주로 뽑아야? 딸년도 임자 없는 아그를 임신혀불고 마누라도 지랄병에 걸린 숭악한 놈을!”(경철어멈)
강 연출은 “이 작가의 작품은 대부분 넉넉한 인심으로 사람을 감싸 안는데 ‘해가 져서…’는 사정없이 사람을 물어뜯어서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는 “작품의 시대가 과거이고 등장인물도 지나간 시대를 살아간 사람이지만, 그 속에서 시대를 넘어서는 삶의 본질과 최소한 지녀야 할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갖춘 연극을 발표해온 이 작가는 영화 ‘신기전’ ‘약속’ ‘아홉 살 인생’의 시나리오도 썼다. 4월 경기 수원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초연했다. 최기봉이 무대디자인을 맡았고 이찬우 이승철 김미옥 김종칠 등이 출연한다. 1만∼2만 원. 031-230-3440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