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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손때 묻은, 그래서 더 아련한

입력 | 2009-11-27 03:00:00


얼핏 보면 추억의 만화가 떠오른다. 얼굴 비례에 맞지 않는 커다란 눈에 꽃, 리본으로 공들여 머리를 장식한 소녀들. 1960,70년대 언저리에 집집마다 볼 수 있었던 자개 거울이나 자개 화장대의 틀을 떼서 만든 액자에 담긴 그림은 그 시절을 지나온 세대에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30일까지 서울 중구 남대문로 에비뉴엘 9층 롯데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홍인숙 씨의 ‘옛날식 행복’전. 작품을 통해 유년의 기억과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이다. 드로잉, 판화, 바느질기법을 활용한 만화나 민화 같은 그림, 어머니 세대의 손길이 배어있는 생활 가구를 응용한 작업은 무거움보다 가벼움, 특이함보다 일상적인 것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홍 씨의 독특한 회화 스타일은 아버지의 낡은 책에서 발견한 어린 시절 낙서그림에서 비롯됐다. 소재도 작가와 두 동생이 주인공인 ‘지화자씨, 얼씨구씨, 조쿠나씨’처럼 개인적 경험을 반영한다. 작가는 말한다. “나를 잘 알아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남을 알 수도,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나와 나의 뿌리가 된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하게 된다.”

손쉽게 보여도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밑그림에 색깔별로 종이판을 잘라 색판 수만큼 프레스기로 눌러주는 판화기법을 사용하기 때문. 그럼에도 에디션 없이 한 장만 만든다.

전시장 중앙에는 시간의 손때가 묻은 자개장에 ‘마음’이란 글자를 친구들이 수놓은 작업을 곁들인 ‘잘 보이는 마음과 잘 안 보이는 마음’이 놓여있다. 편리함에 길든 현대인에게 삶을 이끄는 힘은 정이며, 그런 점에서 ‘옛날식’ 삶에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음을 일러주는 작품이다. 결국 ‘옛날식 행복’이란 전시제목은 지금의 행복을 한번쯤 돌아보자는 반어법인 셈이다.

‘사랑 지나서 싸랑’ 등 문자그림과 ‘명랑한 고통’ 등 글 솜씨가 빼어난 작가가 붙인 제목도 음미할 만하다. 층층마다 화려한 명품 매장이 즐비한 백화점 갤러리에서 만난 수줍고 어눌한 작업, 소박하고 담백한 감성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02-726-4428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