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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이 사람은 왜?] 비 ‘닌자 어쌔신’

입력 | 2009-11-26 11:34:29


'닌자 워커홀릭 비'를 위한 제언

비는 할리우드 진출 후 두번째 영화 ‘닌자 어쌔신’에서 주연을 따냈다.



비가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조금은 상투적인 홍보문안이다. 중국에서 돌아온 장나라와 달리 비는 할리우드에서 돌아왔다. 할리우드으로 스크린 나들이를 다녀온 배우는 최근에만도 전지현, 이병헌 등 스타급 연기자가 꽤 된다.

이제 비의 차례다. 그동안 화려하게 광고해온 액션 블록버스터 '닌자어쌔신'이 26일 개봉한 것이다. 비가 아니라도 '매트릭스' 시리즈로 세계적인 메가 히트를 기록한 제작자 워쇼스키 형제의 작품이라는 점만으로도 기대감은 높다.

감독은 제임스 맥티그. '매트릭스2: 리로디드'와 '매트릭스3: 레볼루션'에 이어 '브이 포 벤데타'를 연출한 워쇼스키 형제의 넘버원 패밀리이다.

참, 워쇼스키 형제는 형 래리와 동생 앤디를 말하는데 지난해부터 래리가 여장을 하고 나타나자 성전환을 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다면 워쇼스키 남매라고 불러야 하는데 아직까지 공식 커밍아웃은 하지 않았기에 그냥 '형제'로 부르기로 한다.

비가 돌아왔다. 그것도 할리우드에서!

비는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한 2008년 작 '스피드레이서'에 조연 '태조'로 출연하며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비의 열정과 노력을 높이 산 이들이 차기작 '닌자어쌔신'의 주연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제 그 결과물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때가 온 것이다.

사전 시사를 통해 국내외에서 흘러들어온 소식과 정황을 종합해보면 이변이 없는 한 '닌자어쌔신'은 무난히 흥행에 성공할 전망이다. (흥행의 세계에는 개봉 후 관객의 반응이 광고홍보와 사전 입소문과 엇갈리는 경우가 적잖게 있다.) 그런데 필자가 본고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작품이 아니라 바로 '비' 자신이다.

비. 프로듀서 박진영이 발굴하고 다듬어 2002년 세상에 내놓은 엔터테인먼트 제품.

워쇼스키 형제가 제작한 2008년 작 ‘스피드레이스’에 조연 ‘태조’로 출연한 비.



가수 정지훈은 '비'라는 예명과 같은 이름의 1집 앨범 '비(Rain)'로 세상에 나타났다. 2집 '태양을 피하는 방법' 3집 'It's raining' 4집 'Rain's world'를 거쳐 지난해 5집 '레이니즘(Rainism)'에 이르면서 그는 한국의 스타, 한류스타, 아시아의 스타로 덩치를 키웠다. 그리고 어느덧 '월드스타 비'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하지만 가수로서 비의 노래들은 베스트셀러는 맞지만 스테디셀러는 아니다. 비 자신은 계속 변화하고 있는데 노래들은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마다 시즌 상품으로 등장한 노래는 비 자신의 퍼포먼스에 의존해야만 했다. 비의 음악은 그 자체의 힘 보다는 가수의 이미지와 퍼포먼스에 기생한다.

성공적이었던 드라마 연기 도전

청춘스타는 멀티 엔터테이너가 되어야 한다는 흥행의 공식에 따라 비 또한 연기에 도전했다. 비의 드라마 출연은 성공적이었다. 혹은 필모그래피 구성상 성공적일 뻔했다.

2003년 '상두야 학교 가자'에서 연기파 배우 공효진과 호흡을 맞췄을 때 연기가 되는 가수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프로필을 통해 예고시절부터 연기를 공부했었다는 것을 알고, 그렇구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해 출연한 '풀하우스'는 대박 시청률을 기록했다. 앙증맞게 '곰 세 마리'를 부르는 송혜교를 구박하고 투덜거리면서 잔정이 쌓여가는 귀여운 남자 캐릭터가 흥미진진했고, 그도 연기자로 자리를 굳히는가 싶었다.

그러나 다음해 '이 죽일 놈의 사랑(이죽사)'에서 복수를 꿈꾸는 처절남 캐릭터로 실험적 연기변신을 했으나 시청률은 기대 이하였다. 좋은 작품과 좋은 시도였으나 시청자들이 비에게 기대하는 바가 이전 이미지에 고착되었던 탓이 컸을 것이다.

비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 영화배우로 데뷔한다.



드라마에서 연기의 맛을 본 비는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에 출연한다. 외국 자동차 브랜드의 23분짜리 단편에 출연하고, 박찬욱 감독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장편 데뷔식을 치른다. 그리고 할리우드로 날아가 2년 후 '스피드레이서'를 선보이고, 올해 '닌자어쌔신'으로 단독 주연까지 따냈다.

아쉬운 점은 스피드레이서에서 살짝 액션연기를 선보이고, 본격적인 닌자이자 킬러로 주인공이 된 비가 무술연기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서구인들은 동양인이 대부분 무술이 좀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오리엔탈리즘에 따라 동양철학의 정신세계를 꿈꾼다. 따라서 할리우드가 제작하는 액션영화에 동양인 주연배우가 무술연기를 흉내 내는 일은 있을 수 있다.

오죽하면 우리의 엽기적 그녀조차 헐리우드 B급 영화에서 일본도를 휘두르겠는가? (전지현도 '엽기적인 그녀'에서 상상의 시나리오 속에서 차태현과 검술대결이 잠깐 있긴 했다.)

무예의 고수? 우리의 사랑스러운 비가?

하지만 비가 전 세계에 개봉되는 작품에 무예의 고수인 주인공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그간의 행보에 비추어 볼 때 뜬금없는 일이다.

지나간 해프닝이지만 2002년 제작발표 된 '바람의 파이터'에서 그는 주연으로 낙점됐었다. 무술인 최배달의 일대기를 담은 만화가 원작인 이 영화에 비가 출연했더라면 그의 '닌자어쌔신'은 상당히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2004년 개봉된 '바람의 파이터'의 주연은 양동근이었다. 그 시절 비는 JYP와 결별하고 자신만의 길을 찾아 나선다.

비를 바라보면 숨차다는 느낌이 든다. 분명히 그는 젊고 야심찬,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훌륭한 엔터테이너다. 하지만 가수로, 드라마 연기자로, 영화배우로, 더하여 프로듀서로, 사업가로 정신없이 뛰는 워커홀릭 비의 동선을 따라가다보면 비 자신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26일 개봉한 영화 ‘닌자 어쌔신’의 한 장면.



혹은 아티스트로서 비는 어떤 가치를 쌓아왔고, 쌓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는 올해 패션 브랜드를 런칭했는가 하면 새로운 뮤지션을 데뷔시켰고, '그 얼굴 가게'와 화장품 유통전쟁을 벌이고 있는 '자연공화국'의 대표모델로 이미지를 팔고 있다.

비는 몸을 무기로 싸우며 청춘을 불사르고 있다. 하지만 무대에서, 뮤직비디오에서,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에서 그가 숨 가쁘게 퍼포먼스를 벌이지 않아도 '비'라는 캐릭터에서 그 어떤 감성적 가치가 드러나길 바란다.

영화제에서 아름다운 청년으로 노래를 부르고, 김혜수에게만 장미꽃을 주지 않아 웃음을 자아내고, 카메라브랜드 광고에서 갠지스 강가에서 셔터를 누를까 말까 고민하는 차분한 소년처럼 비에게는 바쁨 속에 감춰진 감성이 있을 것이다.

숨쉴 틈 없는 질주, 그는 지나치게 방전됐다?

그가 '무릎팍도사'에 나와 너무 바빠서 연애가 깨졌다고 고백한 말은 진실일 것이다. 청년 비는 너무 바쁘다. 그리고 이미 그가 감당해야할 사업영역이 너무 넓다. 더 오래 멀리 달리기 위한 자기충전도 필요하다.

마침 '닌자어쌔신'이 개봉한 금주, 비와 동갑내기 가수 장기하는 1집 활동을 마무리하며 콘서트를 열고 있다. 그가 노래하는 '느리게 걷자'를 들려주고 싶다. 한편 배우 장근석은 그동안 작품에서 보여준 훌륭한 노래솜씨와 OST 노래에 대한 뜨거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한 인터뷰에서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시간,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좋은 비는 젖어드는 것이지, 폭격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좋아하는 비는 몰아치는 스콜이 아니라 때론 잔잔한 이슬비이기도 하다. 비가 진정한 비의 정신, '레이니즘'을 퍼뜨리는 한류스타, 아시아의 스타, 월드스타로 오래 갔으면 좋겠다.

[O2/이 사람은 왜?] 비 ‘닌자 어쌔신’ <찬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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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짱과 모험,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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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일 / 문화평론가 vincent210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