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의 영재가 할리우드의 라이조로 다시 태어나기까지
2007년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로 배우 정지훈이 베를린 영화제에 나타났을 때, 미국의 저명한 엔터테인먼트 잡지인 '버라이어티'의 당시 아시아 지국 편집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에서는 작은 신(little god)과 같은 그인데 이곳에서는 저렇게 알아보는 이 없이 거리를 다니니 기분이 이상하다."
비는 영화 속 닌자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9개월의 무술 훈련과 전신 피트니스를 거쳐 완벽한 몸매를 만들었다.
▶ "아시아의 작은 신" 정지훈
당시 배우 정지훈은 이처럼 소박하게 베를린을 방문했다. TV에서 열광하는 십대들에 둘러 싸인 채 경호원과 뒤엉켜 걸음을 재촉하는 장면만 봤던 필자로서는 그 모습이 마치 초현실주의 영화 속 장면처럼 낯설어 보였다. 한류 열풍이 뜨겁다고는 하나 아시아를 한 발짝만 벗어나도 상황은 무척이나 달랐던 것이다.
그 때 그는 무척이나 씩씩하게 걸었는데, 오랜만에 주어진 자유에 홀가분해서였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는데 대한 멋쩍음을 감추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다.
가수로서의 인지도를 발판으로 지하철 갈아타듯 연기에 도전한 많은 다른 신인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도 예외 없이 싸늘한 시선이 쏟아졌다. '얼마나 가겠냐'는 거였다. 연기 내공이란 단시간에 팝콘처럼 튀겨 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다양한 훈련과 경험으로 숙성되는 것이니 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랬던 것이 겨우 3년 전이다. 단 3년 만에 그는 할리우드에 진출해 '스피드 레이서'의 조연이 됐고, 워쇼스키 형제의 차기작 '닌자어쌔신'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비
가수로서 순식간에 대 스타의 반열에 올라섰던 것처럼 배우로서의 성공담도 무척이나 드라마틱하다. 조금 과장한다면 마치 인공위성의 발사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드라마 '로스트'의 김윤진은 수십 번의 오디션을 본 후에야 캐스팅 됐다는 일화가 있다. 더 나아가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사막 전사'의 장동건도 두 말이 필요 없는 배우로서의 필모그래피에, 한국 영화계의 자본과 기술이 투자된 다각적인 여건의 뒷받침이 있었다.
그렇다면 정지훈은 어떻게 단번에 할리우드 입성에 성공한 것일까. 한국에서 갓 배우의 길에 들어섰던 그가 어떻게 제작자와 에이전트, 스튜디오 책임자와 감독, 그리고도 수백만쯤 되는 관계자들로 겹겹이 둘러싸인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을 뚫고 카메라의 단독 샷을 독차지하는 주인공이 된 것일까.
▶ 배짱과 모험, 그리고 적절한 타이밍
사실 그에게도 할리우드 진출은 엄청난 도전이자 고민이었을 것이다. 당시 비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가수로 승승장구하고 있었고 조금씩 드라마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던 '현재 진행형' 스타였다. 정상에 섰다고는 하나 하룻밤만 지나면 판도가 바뀌는 연예계의 화살과 같은 시간의 흐름이 두렵지 않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는 할리우드로 갔다. 배우 정지훈은 상황을 판단하는 감각이 뛰어났고 배짱도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최고이기에 할리우드에서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현재의 성공을 포기하고 간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할리우드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이다. 적절한 타이밍, 첫 번째 성공 비결이다.
영화 ‘닌자 어쌔신’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는 비.
할리우드에 진출한 이후에도 그는 가수로서의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잡음이 있긴 했으나 월드투어 콘서트를 추진했고 새 앨범도 발표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국내에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고 광고를 통해 지속적으로 그의 존재를 상기시켰다. 그럼으로써 현대 자본주의의 집약체인 할리우드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밑천, 즉 셀링 파워가 마르지 않았다는 점을 증명해보였다.
정지훈은 소위 '열심병'에 걸린 배우이다. 그는 하루 수 시간의 트레이닝과 가학적인 식단을 참아내며 구릿빛의 탄탄한 복근을 만들었다. 많은 배우들의 발목을 잡은 (심지어 주성치를 할리우드 감독의 자리에서 낙마하게 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영어 실력도 놀라울 만큼 향상시켰다.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오르면 대우를 받는 것에 익숙하고 나태해지기 쉽다. 주위에서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하지만 정지훈은 초심을 잃지 않았고, 이 '열심병'은 초고속 성장의 두 번째 동력이 됐다.
▶ 천하의 주성치도 실패한 할리우드 텃세
거울 앞에서 카메라에 비칠 표정과 각도를 수백 번 연습했을 것이다. 그는 다른 배우들의 촬영 현장도 꼼꼼히 체크하여 전체 극 흐름을 익히려고 노력했다. 소위 상황을 판단하는 디지털적 '촉'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그 감각의 원동력이 될 아날로그적 노력도 부족함이 없었던 것이다.
덕분에 그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다.
첫 연기 데뷔작인 '상두야 학교 가자'에서 바보처럼 순수하게 웃던 그는 '풀 하우스'에서 조금 더 여유롭게 스타를 연기했다. '이 죽일 놈의 사랑'에서는 눈빛이 깊어진 듯 보이더니 '사이보그지만 괜찮아'에서는 영화적 감각을 테스트했다. 그리고는 어느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근육만큼이나 단단해진 존재감으로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물론 그가 가야 할 길은 멀고도 멀다. '스피드 레이서'의 연기는 특별한 인상을 남길 정도는 아니었다. 영화 자체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전작에서 카 레이서로서의 파이터 이미지를 선보였다면 '닌자어쌔신'에서는 몸으로 싸우는 파이터 이미지를 이어가고 있다. 비슷한 캐릭터로 이미지가 고착화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전방위적이기보다는 젊은 세대들에 상품적 가치가 더 큰 그의 태생적 한계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감정선을 조절하기 힘든 영어 대사라는 장벽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닌자어쌔신'이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배우 정지훈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닌자 어쌔신’ 공식포스터.
▶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그럼에도 그의 성공은 여전히 눈부시다. 그리고 그의 가능성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한다. 좁은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못해 해외로 나아가려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는 훌륭한 전범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제 그를 한류 스타가 아닌 월드 스타로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다. 아스크림 종류처럼 다양하게 생산되고 있는 아이돌 스타는 더더욱 아니다. 90년대 초 문화대통령이었던 서태지처럼, 그는 하나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풀 하우스'의 신인 배우 영재가 할리우드의 살인병기로 다시 태어났다. 외꺼풀의 작은 눈과 뜨거운 가슴을 지닌 이 젊은이에게,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그에게, 열렬한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이제, 시작이다.
[O2/이 사람은 왜?] 비 ‘닌자 어쌔신’ <비관론>
● 비가 돌아왔다. 그것도 할리우드에서!
● 성공적이었던 드라마 연기 도전
● 무예의 고수? 우리의 사랑스러운 비가?
정주현 / na_janice@hotmail.com
현 영화진흥위원회 해외배급지원펀드 코디네이터
전 부산국제영화제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