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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청각장애도 그녀의 노래를 막지 못했다

입력 | 2009-11-26 16:58:00


하마사키 아유미는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는 아니다.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듣는 이들은 '목소리가 앵앵거린다'는 말을 많이 한다. 비음을 많이 써서 듣기에 편안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 가수는 일본 레코드대상을 2001~2003년 세 차례나 연속 수상했다. 일본 가수로서 이 상을 세 번이나 거머쥔 주인공은 하마사키 아유미가 유일하다. 그 이후에도 충분히 상을 더 받을 수 있었지만 본인이 수상 후보가 되는 것을 거부해 새 기록은 나오지 않았다.



하마사키 아유미가 데뷔 이후 발매한 싱글 음반은 총 2000만장 이상 팔리며 J-POP계에서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앨범을 합하면 지금까지 그의 음반 판매량은 4500만장을 넘어선다.

솔로 여가수 중에선 그녀 이외에 이런 판매량을 올린 사람이 없다. 역대 일본 가수 중 4위의 기록이며 1~3위에 오른 B'z, Mr.Children, 서던올스타즈는 모두 하마사키 아유미보다 데뷔 연도가 훨씬 앞선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 같은 기록은 놀라운 결과다.

가창력이나 댄스 실력이 뛰어나진 않아도 대중의 폭발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기록의 여왕'이 될 수 있었던 하마사키 아유미. 그녀는 어떻게 J-POP의 정상에 오른 것일까?

'나'를 노래한 가인(歌人)…그녀의 빛

하마사키 아유미는 처음부터 가수로 데뷔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부터 수영복 모델, 조연배우 등으로 무명시절을 보낸 뒤 1998년에야 첫 싱글 'poker face'를 발표했다.

처음부터 대단한 히트를 기록한 것은 아니었지만 청순한 외모와 감미로운 멜로디가 돋보이는 곡으로 차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마사키 아유미 자신이 직접 작사한 노래가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은 결과였다.

그녀는 가사에 '나'(僕·보쿠)를 넣어 자신의 꿈과 심경을 노래했다. 가수로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부르는 대신, 스스로 노래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때로는 희망찬 내일을, 때로는 젊은 날의 고독과 방황을 노래한 하마사키 아유미의 노래는 같은 또래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마사키 아유미는 1999년 1월 선보인 첫 앨범 'A Song for XX'가 오리콘 주간 앨범차트 1위에 오르며 톱스타로 도약했다. 같은 해 싱글 'A'가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면서 본격적인 하마사키 아유미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그녀는 음악뿐만 아니라 패션 리더로서도 각광받았다. 무대 의상을 직접 디자인하는 등 패션 분야에서도 재능을 발휘했다.

그녀가 입은 옷, 액세서리, 네일 아트, 염색머리는 최신 유행을 선도했다. 아무로 나미에가 임신과 결혼으로 활동이 주춤해진 사이 하마사키 아유미는 세련된 여가수이자 일본 젊은 여성들의 새로운 우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SURREAL' 'M' 등 매년 수십 개씩 제작된 싱글과 앨범은 오리콘 차트 1위를 휩쓸었다. 일본 레코드대상 3회 연속 수상 등 시상식에서도 그녀가 늘 주인공이었다. 파나소닉을 포함해 각종 대기업 CF에 모델로 출연하고 TV,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로서도 이름을 날리며 '붐'을 일으켰다.

그녀가 소속된 일본 최대의 음반기획사 에이벡스의 총 수익 가운데 40%가 하마사키 아유미 관련 상품 매출로 벌어들인 것이란 분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중화권에서도 각광받으며 아시아 각국에서 투어 공연을 열었고 2004년 한국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아송페스티벌에 일본 대표로 무대에 섰다.

청각장애와 루머…그녀의 그림자

'기록의 여왕'으로 승승장구하면서 악재도 끊이지 않았다. 2002년 자신의 콘서트장을 찾은 한 장애인 소녀에게 욕을 했다는 루머가 확산됐고 급기야 신문, 방송 등 언론을 통해 이 내용이 보도되면서 이미지가 실추됐다. 그녀를 '건방지다'며 싫어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하마사키 아유미는 데뷔 이후 강력한 여성상을 보여주기 위해 성형수술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것 역시 '심각한 성형 중독증'이라는 괴소문의 진원이 됐다. 2004년엔 에이벡스 임원진 내부의 세력다툼으로 회사가 분리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을 키워준 마츠우라 카츠히토 사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해 문제가 커지기도 했다.



지난 5월엔 도쿄 시부야 일대에서 이벤트를 진행한 것이 도로교통법을 위반해 또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이는 준법정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본인들에게 하마사키 아유미에 대한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왼쪽 귀의 청력을 잃어버린 것은 그녀에게 가수로서 치명타를 안겼다. 그녀는 2000년대 초반부터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가수 활동을 잠시 중단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서는 것을 고집하다 결국 왼쪽 귀의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다.

크고 작은 각종 루머와 스캔들, 그리고 장애까지 겪으며 인기와 음반 판매량도 예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이후 하마사키 아유미는 시상식 참석과 수상 자체를 거부하고 대중성에서 탈피해 아티스트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너를 꽃 피워. 뽐내듯 아름답게 꽃 피워봐. 그 이후엔 그저 조용히 꽃잎은 지고 사라질 뿐이니까.'

하마사키 아유미의 대표적인 히트곡 'vogue'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인기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이미 스타로서 자신이 어떤 앞날을 맞게 될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변함없이 자신의 인생을 노래에 담아 들려주고 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