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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침체-신흥국 회복 ‘디커플링 2.0’시대

입력 | 2009-11-27 03:00:00

내년 美-유럽 침체 지속… 中 印 아세안은 고성장 예상




경제위기로 한동안 사라졌던 ‘디커플링(decoupling)’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2.0’이라는 새로운 접미사를 달고 있다.

2004∼2008년 초 ‘디커플링’이라는 단어가 경제계에서 유행했다.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져도 아시아 남미 동유럽 등의 신흥시장국은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2000년 닷컴버블 붕괴 후 빠르게 회복하던 미국 경제가 2004년을 정점으로 꺾였지만 신흥국의 성장세는 이후에도 가파르게 이어질 때였다. 디커플링은 특히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신흥국 고성장을 설명하는 용어로 회자됐고 증권가에서는 신흥국 펀드 마케팅의 키워드가 됐다.

하지만 2008년 하반기 리먼브러더스 사태를 기점으로 경제위기 쓰나미가 지구촌을 휩쓴 뒤 디커플링 이론은 설득력을 잃었다. 위기의 발원지는 미국이었지만 신흥국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해 4분기 미국 국내총생산(GDP)이 연율로 ―5.4% 하락할 때 한국(―20.4%) 대만(―30.4%) 등은 훨씬 빠르게 경제가 추락했다. 선진국발(發) 위기 앞에서는 신흥국도 별 수 없다는 이른바 ‘리커플링(recoupling)’이론이 급부상했다.

그러다 최근 신흥국 경기회복세가 선진국에 비해 훨씬 뚜렷하게 나타나면서 디커플링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주장이 다시 나오고 있다. 올 2분기 선진국 성장률이 ―0.7%(연율)로 침체가 이어질 때 아시아 신흥국은 10∼20%대의 놀라운 회복세를 보였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현상을 ‘디커플링 2.0’이라고 불렀다. ‘디커플링 2.0’은 러시아나 동유럽 국가는 회복세가 미약한 데 비해 아시아 국가들은 빠른 회복세를 보이는 것처럼 신흥국 내에서도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이 과거와 큰 차이점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분석에 따르면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신흥국이 받는 금융스트레스의 96%가 선진국에서 비롯된다. 선진국발 금융위기에 신흥국도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일단 경기가 저점을 통과한 뒤 각 나라의 회복 시기와 속도는 △경기부양책의 강도 △금융시스템 부실화 정도 △경기회복을 이끌 시장을 제공할 수 있는 국가의 존재 여부 △국제원자재 가격 등 다양한 변수가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IMF는 최근 내년 세계경제 성장률을 3.1%로 예상했다. 이 중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성장률은 1.3%에 그치는 반면 신흥국은 5.1%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흥국 중에도 러시아(1.5%), 동유럽(1.8%)은 침체가 이어지는 반면 중국(9.0%), 인도(6.4%),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5개국(4.0%) 등은 고성장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경기 회복기 신흥국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한국은 어떤 전략을 펼쳐야 할까.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한국 산업구조를 장기적으로는 내수 주도형으로 바꿔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대외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해외 충격이 발생했을 때 한국이 받을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재정 및 통화정책 등에서 신속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디커플링(decoupling):


미 국 등 선진국의 경제와 증시가 침체에 빠지더라도 신흥국의 경제는 성장하고 주가도 상승할 수 있다는 이론. 신흥국의 대(對)선진국 수출비중 감소 및 신흥국 간의 무역 증가, 내수 비중 확대, 중국 등 거대 신흥국의 지속적 성장 등이 디커플링의 요인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