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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31억개 인간유전자 서열은 神의 설계도

입력 | 2009-11-28 03:00:00

게놈지도 완성한 과학자
과학통해 신의 존재 확신

진화-창조론 양극단 극복
종교와 과학의 화해 주장




 인간은 유전자에 의해 지배받지만 동물과 달리 도덕과 자유의지가 있다. 이런 점은 신을 거론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신의 언어/프랜시스 콜린스 지음·이창신 옮김/324쪽·1만4000원·김영사

저자는 “과학과 종교가 화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이력을 보면 이런 주장이 울림을 가질 만하다.

저자는 미국 국립보건원장이다. 물리화학과 의학을 전공한 저자는 1993년부터 6개국 과학자 2000여 명과 함께한 ‘인간 게놈프로젝트’를 총지휘했다. 2003년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31억 개 유전자 서열을 모두 밝히는 게놈 지도가 완성됐다.

종교와 별로 관련이 없을 법한 저자의 세계관은 26세 때 치료 불능의 할머니 환자를 만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할머니는 저자에게 “왜 신을 믿지 않느냐”고 물었다. 저자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고 대답했지만 ‘과학자가 자료 검토도 없이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면 안 된다’는 자각에 이른다.

해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책에 매달렸다. 그는 바빌로니아의 사모스 찬송, 고대 인도의 마누법전, 플라톤 학파까지 한결같은 목소리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도덕법을 강조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심과 이타심으로 대표되는 도덕법이 오직 인간의 내면에만 있다는 것은 저자가 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계기가 됐다.

사심 없는 이타주의는 진화론자에게 가장 큰 과제라고 저자는 말했다. 저자는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타주의를 실천하는 자에게 간접적으로 종족 번식의 이익이 돌아간다는 점을 들어 이타주의를 설명하지만 이 주장은 한계에 부딪힌다”고 말했다. “영장류를 보면 이 주장은 맞지 않는다. 가령 새로 우두머리가 된 수컷 원숭이는 훗날 생길 자기 새끼의 앞날을 위해 다른 새끼들을 제거한다.”

저자는 과학자답게 과학의 성과들을 통해 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빅뱅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의 기원에는 몇 가지 놀라운 우연이 존재한다. 대폭발 직후 1000분의 1초 동안 물질과 반물질이 비대칭을 이뤄 우주의 질량이 생긴 것, 초신성 폭발로 중원소가 생길 때 양성자와 중성자를 묶는 강한 핵력이 조금만 약했어도 우주에는 오직 수소만 존재했을 것이라는 게 대표적이다. 스티븐 호킹은 “우주가 왜 꼭 이런 식으로 시작됐어야 했는지, 우리 같은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신의 의도적인 행위로밖에는 달리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놈 연구를 통해 저자는 인간과 다른 생물의 조상이 같다는 냉혹한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인간과 생쥐의 게놈 크기는 거의 똑같고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 목록도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인간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으로만 진화했으며 신이 끼어들 영역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DNA 서열에 비록 생물학적 기능에 관한 방대한 자료가 담겼다 해도 그 서열만으로는 도덕법에 대한 지식과 같은 인간만의 특성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진화론, 창조론의 양 극단을 극복하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란 개념을 소개한다. 바이오로고스는 신이 모든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은 신의 의지를 표현한다는 믿음이다. 이 개념은 자연계를 이해하면서 생기는 틈에 신을 끼워 넣지 않는다. 다만 ‘우주가 어떻게 생기게 됐을까’처럼 과학이 대답하지 않는 문제에 대답할 때 신을 끌어들일 뿐이다.

책의 끝부분에 저자는 종교인들에게 부탁한다. “종교인들은 코페르니쿠스의 권고에 따라야 한다. 그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신의 장엄함을 깎아내리기는커녕 되레 축하할 기회라고 생각한 사람이다. 신에게 감사를 표현할 때 무식이 유식보다 더 위에 있을 수 없다.”

또 과학자들에게 부탁한다. “과학과 영적 세계 사이에서 점점 고조되는 전쟁에 휴전을 선포할 때다. 과학은 신에 위협받지 않는다. 신도 결코 과학에 위협받지 않는다. 신은 과학을 가능케 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