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짧은 수명-불확실성단기투자 선호 습성 만들어장수시대 최후의 승부는노후자금 투자 여부에 달려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만 년 전 원시인들의 평균수명이 20세가 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 인간의 수명은 계속 늘어났다. 1920년대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30대 초반이었지만 1999년엔 75.2세였다. 약 80년 만에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40년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 추세대로 기대수명이 늘어간다면 유아기를 별 문제없이 넘긴 지금 20대 젊은이의 평균수명은 90세 이상까지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긴 인생에 대비하고 있을까. 사회의 시스템은 이것에 맞게 돌아가고 있을까. 답변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이다. 우리들이 미래에 대비해 살지 않고 현재만 생각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로 “그 사람이 내일 돈을 꼭 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 지금 있을 때 받는 게 낫다”고 얘기할지 모른다. 불확실성 때문에 금액이 다소 적더라도 오늘 받아내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충동적인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장기적인 것보다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것을 훨씬 좋아하는 본능이다.
위의 예를 바꿔서 1년 후에 돈을 받기로 한 상황이라고 하자. 그 사람이 “정확히 1년 후 100만 원을 받겠어요? 아니면 1년 하루(366일) 후 101만 원을 받겠어요?”라고 물어본다. 그러면 거의 모든 사람은 1년 하루 후에 101만 원을 받겠다고 답한다. 이때는 위와 다르게 하루치의 이자를 감안한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 왜일까. 이때는 즉각적인 것에 대한 유혹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같은 하루의 시간차라도 현재와 매우 가깝거나 먼 것에 따라 전혀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을 시간불일치(time inconsistency)라고 한다. 그리고 ‘시간이 현재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중요성을 깎아내린다’는 의미로 ‘과도한 가치폄하(hyperbolic discounting)’라는 말도 쓰인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인간이 즉각적이고 충동적인 것을 좋아하는 본능은 과거의 짧았던 수명과 불확실했던 미래에 적응했기 때문이다. 만약 과거 인간의 수명이 길어 오래 살았다면, 그리고 미래에 대해 불확실성이 많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장기적으로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이를 행동에 옮기는 유전자를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인류의 역사는 그렇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환경은 오늘날 많이 변했다. 인류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오래 살게 됐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에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즉각적인 것을 선호하는 성향을 금방 떨칠 수는 없는가 보다. 여전히 즉각적인 것의 유혹에 끌리며 살다 보니 투자도 단기적이고, 소비는 충동적이며, 다른 모든 행동도 즉흥적이 된다.
이렇게 인생과 투자를 길게 보는 것에 익숙지 않다면 당신은 원시적인 습성이 아직 많이 남은 사람으로 여겨질 수도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송동근 대신증권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