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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SCHOOL DIARY]“뭔가 내 특징을 콕 찍어… 근사한 별명 없을까”

입력 | 2009-12-01 03:00:00


9월 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 3학년 ○반 2학기 반장선거에선 ‘선덕여왕’과 ‘해리포터’의 대결이 벌어졌다. 반장 후보자 5명 중 L 양은 자신을 ‘선덕여왕’이라고 소개하면서 “현명하고 자비롭게 반을 이끌어 가겠다”고 호소했다. 이에 맞서는 라이벌 C 양은 “제 별명은 ‘해리포터’”라며 “저는 마법으로 여러분과 함께 호그와트 같은 즐거운 학급을 만들겠습니다”라고 연설했다. 결과는? ‘해리포터’의 9표차 승리. 이후 C 양 주위에는 ‘헤르미온느’ 부반장과 자신이 ‘론’임을 자칭하는 친구가 생겼다.

학창 시절 별명은 또 하나의 이름이다. 과거엔 친근감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사용됐다. 하지만 요즘 별명은 단순한 애칭이 아닌 자신의 캐릭터를 홍보할 수 있는 수단이다. C 양은 “학기 초에 내가 먼저 내 별명을 말해주면 아이들이 친근감을 느껴 친구를 사귀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의 별명을 짓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초중고교생들이 자기 별명을 스스로 짓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 유형이다.

첫째, ‘외모형’. 자기의 외형적 특징을 부각시키는 전통적 방법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친구들이 내 별명을 지어주기 전에 나 자신의 외형적 단점을 익살스럽게 표현해 ‘선수’를 쳐야 한다는 점. ‘땅끄(땅으로 꺼졌네)’ ‘작뚱(작고 뚱뚱한)’처럼 외모적인 특징을 표현하는 말을 줄인 별명이나 ‘슈퍼마리오’ ‘엠씨몽’처럼 얼굴이 닮은 캐릭터나 연예인의 이름을 딴 경우가 대표적. 초등학교 6학년인 P 양은 “키가 작은 아이가 자신을 ‘땅꼬마’라고 불러달라고 한 적이 있다”면서 “자기 단점을 숨기지 않는 당당한 모습에 호감이 갔다”고 말했다.

둘째, ‘행동형’. 자기 별명을 밝힌 뒤 그 별명에 맞는 말과 행동을 학생들 앞에서 무한 반복하는 유형. ‘나대는 햄스터(조그만 외모에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휘젓고 다니는 경우)’ ‘스피크 코리안(영어발음을 과도하게 굴려 말하는 경우)’ 등 스스로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한다. 단, 지나친 행동은 자칫 원하지 않는 별명만 얻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으니 주의. 자기 별명을 ‘개만이(개인기만 만 개)’라고 주장하는 고교생 P 군(18)은 쉬는 시간 뿐 아니라 수업시간에도 성대모사, 최신 유행 춤 등 다양한 개인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딱 한 번 시도한 ‘에일리언이 걷는 모습’이 실수. 친구들에게 큰 반응을 얻었지만 이후 그의 별명은 ‘에일리언’이 됐다.

셋째, ‘자뻑형’. 자신의 외모나 지식을 과시하는 유형이다. 초등학교 3학년 J 양은 학교에서 예쁘기로 유명하다. 문제는 자신이 예쁘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 수업시간에도 자주 거울을 보고 끊임없이 예쁜 척을 하는 J 양은 ‘나와 함께 다니면 너희도 빛이 난다’는 이유로 자신을 ‘황금반지’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J 양 주변에는 ‘황금반지’를 지켜주고자 하는 남학생들이 모여 ‘반지원정대’를 결성했다.

넷째, ‘지략형’. 자신의 단점을 숨기기 위해 오히려 멋진 별명을 스스로에게 붙이는 유형. 초등학교 5학년 K 군은 목소리 톤이 높고 수다스럽다. 하지만 선생님이나 여학생들을 대할 땐 긴장 탓에 시종일관 표정과 말투가 얼어버린다. K 군은 이런 단점을 위장하기 위해 자기 별명이 ‘쿨(cool) 보이’라고 밝혔다. 여자 앞에선 과묵하고 ‘쿨’한 남자란 주장이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