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세종시 공방 속 ‘지역균형발전론’ 유효성 논란

입력 | 2009-12-03 03:00:00

편중 해소 공감대… 정치논리로 변질




《노무현 정부가 세종시 조성계획을 입안한 근거는 국토균형발전이었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각 지역이 고루 잘살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학계 등 전문가 그룹에선 균형발전론 자체가 유효한 명제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고도성장기 균형발전론 등장
盧정부, 명분에만 매달려 추진
수도권 기능축소 찬반 여전


○균형발전론은 정치 이슈인가

균형발전론은 학계에서 정설로 굳어진 이론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1월 경제점검회의에서 “선진국은 주거공간과 생활공간을 분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논리적으로 반드시 증명된 것은 아니다”고 전제를 달았다.

한국에선 1960년대부터 균형발전론이 고개를 들었다. 1964년 대도시집중억제방지책을 시작으로 국토관리기본계획 등 40년 가까이 비슷한 대책이 쏟아졌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서강대 김경환 교수(경제학)는 “정책의 최우선 순위가 고도성장이었기 때문에 대도시의 순기능을 용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균형발전론은 노무현 정부에서 전기를 맞았다. 성경륭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을 중심으로 ‘선(先) 지방집중, 후(後) 수도권 계획관리’라는 원칙 아래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지방분권특별법, 신행정수도건설특별조치법 등을 입안했다. 하지만 당시 만들어진 계획들의 실효성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세종시 설계를 주도한 서울대 안건혁 교수(건설환경공학)도 지난달 한 조찬토론회에서 “세종시의 인구 목표는 당초 30만 명 얘기가 나왔는데 이 정도로는 수도권 과밀 해소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해서 50만 명으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 안은 없었다”고 회고했다. 균형발전이 경제 이슈가 아니라 정치 이슈라는 지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수도권은 과밀인가

균형발전론의 반대편에는 메가시티론이 있다. 두 이론 모두 지방을 광역화해서 거대 경제권을 형성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수도권을 어떻게 할지에 있다. 균형발전론에선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메가시티론은 수도권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고 본다.

수도권 인구 비중(2005년 말 현재 48.1%)을 어떻게 볼 것이냐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있다. 일본 도쿄(東京)는 수도권 인구 비중이 한국보다 낮지만 인구밀도는 km²당 2473명으로 서울(km²당 1834명)보다 오히려 높다. 프랑스 역시 수도권인 일드프랑스 면적이 국토 전체의 2.2%에 불과하지만 전국 인구의 18.7%가 살고 있다.

○참여정부식 균형발전은 가능한가

과거 정부의 균형발전론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균형발전론 자체에 대해선 긍정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방법론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방에 투자하되 수도권의 기능을 분산해 약화시키는 대신 현재의 기능을 더 강화해 지방의 발전과 병립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발전 자체가 어렵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충청권 임시수도를 기획했던 서울시립대 권원용 교수(도시행정학)는 “도시화가 90% 이상 진행된 상태에선 기존 균형발전론이 적용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세종시나 혁신도시를 만들면 그곳의 인구가 자체적으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대전 등) 인근 도시의 인구를 흡수하는 방식이 된다”며 “국가 전체로는 제로섬 게임”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 시절에는 인구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었고, 따라서 충청권에 수도를 만들면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인구를 막는 댐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 인구를 빼내야 하는데 이 경우 수도권 경쟁력도 약화된다”며 “노 전 대통령의 균형발전론은 타이밍을 놓친 사례”라고 분석했다.

경제구조가 폐쇄경제에서 개방경제로 넘어왔으므로 균형발전론의 근거가 약해졌다는 시각도 있다.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인적 물적 교류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도권의 경쟁상대는 지방 도시가 아닌 외국의 대도시라는 설명이다. 덴마크의 완구기업인 레고그룹이 1997년부터 경기 이천에 20만 평 규모의 테마파크를 설치하려다 수도권 규제에 막혀 독일 뮌헨으로 옮긴 사례도 있다.

프랑스나 일본 등 지방분산정책을 쓴 나라들도 최근엔 수도권 규제를 풀고, 지방은 지방 나름대로 거점 도시를 만드는 쪽으로 돌아섰다. 김경환 교수는 “분산정책의 모범 사례로 꼽는 프랑스도 2002년 균형발전을 정책목표에서 삭제했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