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묵은 소리’ 좋은 서울의 LP카페
LP카페 ‘피터 폴 앤 메리’ 주인인 한계남 사장이 카페의 LP레코드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사장은 “가게를 운영하며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았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워졌다”며 웃었다. 김재명 기자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LP 레코드 9000장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LP카페 ‘피터 폴 앤 메리’는 그런 ‘사소한 추억’들이 잔뜩 묻혀 있는 지뢰밭 같은 장소다. 지난달 말 찾아간 이곳은 벽면 한 면 전체가 모두 갈색으로 변색된 LP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추억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올 것 같습니다만….”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음악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오는 곳이죠. 심지어 소녀시대 최신곡을 찾는 사람들도 가끔 오시니까요.” 주인 한계남 사장이 빙긋 웃었다.
○LP 히트곡 1위는 ‘호텔 캘리포니아’
한 사장은 3년 전 여름 일하던 여행사를 그만두고 LP카페를 차렸다. 50대가 됐을 때 직장을 그만두고 ‘진짜 멋진 술집’을 한번 만들어보겠다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술집을 만들기 위해 개업 3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 서울 중구 회현동 지하상가나 동대문구 황학동 LP 중고상을 매일 찾아다니며 레코드를 모았다. 1930년대 미국 웨스턴 일렉트릭 진공관 앰프를 사들여 직접 스피커를 설계했다. 음향 설비 준비에만 수억 원의 돈을 들였다.
“집에서는 절대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올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이젠 오디오에 관심이 많은 단골들만 오시는 것 같네요.”
LP카페를 주로 찾는 연령은 40대다. LP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 다음은 50대와 30대 고객의 순이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LP카페도 마찬가지다. 인근 신사동의 또 다른 LP카페 ‘트래픽’의 정석호 매니저도 “손님 대부분이 오디오에 관심이 많은 40대”라며 “80년대 대학교의 ‘음악 감상실’ 같은 분위기도 느껴진다”고 설명했다.
한계남 사장이 직접 설계한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 193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진 제품을 들여와 카페 공간에 적합하게 바꿨다. 김재명 기자
LP카페에서 가장 궁금한 음향 문제를 물어 봤다. 정말 LP 소리가 CD나 MP3와 다른 것일까. 다른 저장매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을 LP에서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까. 한 사장은 ‘다르다’고 단언했다. “CD는 소리를 숫자로 전환해 만드는 음입니다. 가장 낮은 음이 20Hz 영역에서부터 출발하죠. 하지만 LP는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손실 없이 고스란히 들려줍니다.”
게다가 같은 음량이라도 LP는 소리가 높게 ‘트이는’ 느낌인 반면 CD는 ‘막혀 있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 오디오 마니아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는 제대로 된 오디오 설비를 갖춘 곳에서만 체험할 수 있다고 한 사장은 덧붙였다. 최근 복고 바람을 타고 LP카페가 서울 시내 곳곳에 개업하고 있다. 집계된 것만 10여 개이며 소규모로 개업한 것은 더 많을 것이란 게 LP카페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피터 폴 앤 메리’와 ‘트래픽’ 외에도 마포구 서교동의 ‘별이 빛나는 밤에’와 종로구 명륜동의 ‘우드스탁’ 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