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실패할 기회 준다” 10년간 교내 벤처 5000개 탄생 학생들이 CEO-임원 맡아 20개 팀 경쟁 최종2개 선발, 실제 기업경영 체험형 강의 최대 3000달러 창업자금 지원 실패해도 학생 책임은 없어… 이윤 기부 ‘사회적 책임’도 배워
지난달 17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인근 웰즐리의 밥슨 칼리지 ‘신입생 경영 체험’ 수업에서 학부 1학년생들이 사업 계획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이 대학 학생이면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이 강의에서는 실제 벤처기업들이 설립된다. 웰즐리=조은아 기자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구글의 세르게이 브린…. 세계는 이들처럼 미래 강국을 이끌 ‘혁신형 인재’를 키우는 데 몰입해 있다. 각국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가 모인다는 미국 동부의 보스턴을 중심으로 그 움직임을 담았다. 학생들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시장에서 꽃 피우는 기업가정신을 체험형 교육을 통해 배운다. 교육뿐 아니라 캠퍼스와 기업을 연계하는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다.》
“‘밥슨 컨트리클럽’이 밥슨 칼리지 안에 골프장을 지으려면 대학 이사회로부터 토지 사용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사회가 1월에 열리는데 어느 세월에 사업을 시작합니까?”(교수)
“그 문제점을 알게 된 뒤 다른 의사결정 조직인 ‘대학집행위원회’도 토지 사용에 대한 허가를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내년 1월 이전에 열리기 때문에 곧 허락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A 학생)
“금요일 회의 결과 최고경영자(CEO)를 두 명 두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내부 CEO와 외부 CEO를 각각 두고 역할 분담을 할까 합니다.”(B 학생)
지난달 17일 미국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인근 웰즐리의 밥슨 칼리지. 강의실은 ‘밥슨 컨트리클럽’이란 회사의 임원 회의실 같았다. 교수는 회사의 주주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고 학생들은 각 사업 부문 임원처럼 돌아가며 명쾌한 답을 내놨다.
실제로 밥슨 컨트리클럽은 내년 1월 밥슨 칼리지 산하 법인으로 설립될 예정이다. 학생들은 강의내용을 그대로 실행한 것이다. 학생들은 회사 설립 과정에서 의사결정권자를 빨리 찾아 시설 규제를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창의적인 조직을 꾸리는 지혜를 터득한다. ‘신입생 경영 체험(Freshman Management Experience)’이란 이 강좌는 18세 전후인 이 대학 학부 1학년생이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들어야 한다.
○ 교실이 곧 치열한 시장
이곳에선 기업가정신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이날 강의실에서는 덴마크의 대학연합교육기관인 ‘VIA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교수진 5명이 청강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유럽에서도 기업가정신 관련 교육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며 “우리 학교에 기업가정신 프로그램 개설을 검토하고 있어서 어떻게 가르치는지 보러 왔다”고 소개했다.
밥슨 칼리지의 노하우는 강의실이 곧 기업 현장이라는 점이다. 매년 9월에 학기가 시작되면 60명의 학생은 3명씩 20개 팀으로 나뉘어 번뜩이는 창업 아이템을 내놓는다. 20개 팀은 불꽃 튀는 경쟁을 거쳐 11월경 2개 팀으로 압축된다. 2개 팀으로 살아남으려면 3번의 투표를 거쳐야 한다. 투표를 앞두고 학생들과 교수진 앞에서 사업설명회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3분. ‘조직 구조’ ‘사업 실행 가능성’ 등 강의의 주제에 맞춰 사업의 강점을 홍보해야 한다. 실제 시장에서 창업자들이 투자자의 마음을 사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나머지 학생은 투표과정에서 이사회 멤버가 된다. 팀 발표가 끝나면 매서운 질문을 거침없이 퍼붓는다. 사업 가치를 판단하는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5000여 개의 벤처기업이 이 강의에서 태어났다. 이날 수업에 참여한 매트 뮐러 씨는 “보통 창업하려면 막연한 경우가 많은데 이 수업에서는 교수들과 대화를 하면서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답을 찾는다”며 “특히 그룹 활동을 통해 리더십을 배우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흥미로워하는 또 다른 점은 두 교수가 수업을 함께 진행한다는 점. 이 강의도 남자 교수와 여자 교수가 한 명씩 나와 마치 토크쇼의 진행자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남자 교수가 마케팅의 일반론을 이야기하면 정보기술(IT) 등에 특화된 여교수는 블로그와 홈페이지 활용법 등 구체적인 마케팅 방법을 소개하는 식이다.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중점적으로 배우는 것은 ‘성공’이 아닌 ‘실패’다. 에릭 노이즈 밥슨 칼리지 교수는 “교육의 핵심은 실패할 기회를 주고, 실패를 통해 학생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공 여부보다 실패를 통한 학습을 강조하기에 성적 평가 방식도 남다르다. 학생들의 벤처회사가 낸 이윤을 단순 비교하지 않는다. 학생 각자가 기대한 이윤과 실제 이윤 간의 차이를 본다. 노이즈 교수는 “학생 평가의 주된 내용은 배움에 대한 증거”라며 “보고서 제출과 상담 등을 통해 실패의 원인을 깨닫고 있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창업하는 기업의 CEO 선출 방식도 실패 속에서의 도전정신을 높게 산다. 마지막 남은 2개 팀을 주도한 학생이 해당 회사의 CEO가 되는 게 아니다. 학생들은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CEO 투표를 한다. 첫 단계에서 낙오된 학생도 실패를 통해 배우고 얼마든 다시 도전하면 CEO가 될 수 있다.
대학은 이 수업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2개 창업 그룹에 최대 3000달러를 지원한다. 지난해까지 밥슨 칼리지에 근무했던 이현숙 서울산업대 교수는 “학생들이 받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실패를 반복하고 원인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업가정신은 삶의 철학
밥슨 칼리지가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는 이유가 단지 회사를 세우는 데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이 수업에서 태어난 벤처기업 가운데 사업을 지속하는 곳은 10% 이하다. 노이즈 교수는 “모든 사람이 빌 게이츠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기업가정신은 삶을 창의적으로 이끌어가는 과정으로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대학 관계자는 “굳이 창업을 하지 않더라도 CEO 역할을 몸소 체험하며 수동적이고 타성적인 근로자가 아니라 진취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로 자라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업가정신 수업을 학부 1학년 학생이면 누구든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밥슨 칼리지는 지구촌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사회적 기업가정신’도 가르친다. 비정부기구(NGO)에서 일하는 인재들이 관료적인 타성에 빠지지 않고 진취적으로 조직을 이끌도록 돕는 힘을 키우자는 것이다. 1월에 창업하면 4월까지 거둔 이윤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도 사회적 책임을 깨닫는 과정이다.
웰즐리=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밥슨 졸업생들 “나는 이런걸 배웠다” ▼
○ 프랜차이즈 사장 타랑 고살리아 씨
“최근 보스턴에 요거트 전문점 레드 망고 프랜차이즈를 열었습니다. 앞으로 7년간 5개 점포를 더 열 생각입니다. 밥슨에서 기업가 정신 수업을 듣고 창의적인 사업계획서를 써서 (투자를 받기 위해) 은행을 설득하는 사업 과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 롤플레잉게임 사업가 알레한드로 카르데나스 씨
“가상 캐릭터 롤플레잉게임(RPG)을 만들어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2006년 동업자들과 논의할 때 RPG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난감했죠. 그때 밥슨 칼리지의 졸업생 주소록에서 장난감 및 게임산업 분야 동문을 찾아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 사회적 기업가 렌조 피사 씨
“밥슨 칼리지 학부 수업에서 니컬러스 클링이란 친구를 만날 수 있었죠. 우리는 뭉쳐 라틴아메리카의 불우 아동 교육에 힘쓰는 비영리기관을 세웠습니다. 우리가 만든 기브 백 어 팩(Give Back a Pack) 재단은 중고 책가방을 모아서 어려운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혁신영재 교육의 힘… 구글-페이스북 개발 원동력”▼
美 존스홉킨스대 CTY 줄리언 존스 선임이사 인터뷰
사우디-아일랜드 등 벤치마킹… 세계 분교 활용 열린교육 추진
지난달 20일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 영재센터(CTY·Center for Talented Youth)에서 만난 줄리언 존스 선임이사(사진)는 혁신적인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CTY는 초중고교생 대상의 영재교육기관으로 학생들의 혁신과 창의성을 이끌어내는 수업을 진행한다. CTY는 여름방학에는 대학에서, 학기 중에는 온라인으로 강의를 한다.
이곳 영재교육의 특징은 영재를 한 분야로 특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강의는 ‘중동의 정치’,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등 여러 분야가 혼합돼 창의적인 사고력을 요한다. 영재교육이라고 하면 단순히 과학과 수학 교육을 떠올리는 한국과는 차이가 있다.
영재교육은 글로벌 리더를 키우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었다. CTY는 이와 관련해 ‘CTY 세계 여권’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이 여권을 갖고 있는 학생이면 미국의 지점들은 물론이고 각국의 CTY 분교 어느 곳에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 한 국가의 인재로 키우는 게 아니라 일찍이 국제교류를 강화해 복합적인 국제 문제를 평화적으로 푸는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집트의 방문단이 CTY를 찾아 이스라엘과 이웃 이슬람 국가들의 영재들을 함께 불러들여 중동의 물 부족 해결법 등을 함께 고민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세계 각국의 영재교육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존스 선임이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영재교육의 모델을 찾기 위해 컨설팅 회사에 용역을 준 결과 CTY를 벤치마킹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포스트 석유 시대’를 대비해 신성장동력을 마련할 혁신형 인재를 키우기 위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CTY의 영재교육을 벤치마킹해 중학생을 대상으로 일찍부터 기업가정신과 의사결정력을 집중적으로 키워줄 예정이다.
CTY의 영재교육 노하우는 이처럼 세계 곳곳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아일랜드 태국 홍콩 등지에 CTY의 컨설팅을 받은 영재교육기관들이 세워졌다. CTY가 직접 운영하는 CTY 분점도 멕시코 중국 스페인 등에 있다.
볼티모어=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