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치료 요양 이해인 수녀 인터뷰
얼마 전, 축복처럼 해인 수녀를 만났다. 피아니스트 노영심 씨(42)를 따라나섰다가 한 수녀원에서 요양 중인 수녀님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20여 년간 모녀처럼 지내 온 두 사람은 정성이 가득 담긴 작고 아름다운 선물을 많이 하기로 유명하다. ‘해바라기 연가’(이해인 시낭송/노영심 피아노)라는 CD도 함께 만들었다.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왔느냐”며 책망하는 수녀님께 차마 인터뷰 얘기는 꺼내지도 못한 채 “그저 수녀님이 뵙고 싶어서 왔다”고만 했다.
“지난해 여름, 첫 서원 40주년을 맞아 엄마에 대한 원고를 넘기고 나서 속이 불편해 장 내시경 검사를 했는데 암이 발견됐어요. 순간적으로 당혹스럽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였지요. 1, 2기가 지난 상태여서 수술을 했고 그동안 방사선 치료 28번, 항암치료 30번을 받았습니다. 요즘도 하루에 약을 열 알 넘게 먹으며 정기적으로 체크를 받고 있습니다.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라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해인 수녀의 사모곡인 책 ‘엄마’는 지난해 8월 15일 샘터에서 출간했다. 엄마 편지의 첫말은 늘 “귀염둥이 작은 수녀 보아요”였고, 딸 편지의 마지막 말은 “엄마 딸 해인이에요…”였다고 한다. 열아홉에 이씨 집안으로 시집온 수녀님의 어머니는 1남 3녀를 두었고 이 중 두 딸이 수녀가 됐다. 열세 살 터울인 해인 수녀의 언니는 봉쇄수녀원인 가르멜수녀원에서 수도 중이다.
―남들에게 위안이 되는 시를 많이 써오셨지만 무척 힘드셨을 텐데….
“예, 정말 많이 아플 때는 기도하기도 힘들었어요. 환자들한테 함부로 고통을 참으라고 할 게 아니더라고요(웃음).”
항상 남 배려하던 모습 또렷
아프니 감사할 일 더 많아져
“추기경님과는 병원에서 같은 층을 썼어요. 어쩌다 제가 병실에 가서 안수기도를 청하면 ‘이 수녀가 아름다운 시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많이 주었으니 할 만하시면 좀 더 세상에 머물러 시로써 당신 영광을 드러내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해 주셨죠. 힘든 가운데서도 늘 남을 먼저 배려하는 그분의 모습이 잊혀지질 않습니다. 항암치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뵙고 올까 하다가 그냥 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됐어요. 교회 안팎의 신문에 추모시 몇 편을 싣는 것으로 추도의 마음을 대신했지요. 점선이 빈소에는 다녀왔는데 영희 빈소에는 치료 받느라고 못 갔어요.”
수녀님은 잠시 서가를 뒤적이더니 책과 탁상시계 등 두 점을 가져왔다.
‘기쁨이 열리는 창’(마음산책·2004)이란 수녀님의 산문집 첫 장을 넘기자 ‘인격 장애 김점선을 교화 노력 중인 이해인 닭띠 언니에게-개띠 점선’이라고 적혀 있다. 김점선답다. 수녀님의 글방 벽에는 그가 그린 그림 2점도 걸려 있다. 한 손에 들어가는 하트 모양의 시계는 장영희 교수가 수업시간에 강의실에 들고 다닌 유품으로 가족들이 보내왔다고 한다.
“제 경우 아프고 나서 오히려 매사 감사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지금 이 순간에 더 충실하게 됩니다. 전에는 종이에 시를 썼다면 지금은 삶 자체에 시를 쓰는 느낌으로 삽니다. 내면의 행복지수가 더 높아졌다고 할까요.”
―하루 일과는….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로 배려를 해 주셔서 남보다 조금 늦게 일어나고 일찍 잠자리에 들지요.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위로 편지도 보내 주셔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시간여 대화가 오간 뒤 수녀님은 저서 두 권에 아름다운 꽃 모양을 만들어 친필 사인을 해주었다. 신작시 한 편에 수녀님의 요즘 심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새로운 맛
물 한 모금 마시기/힘들어하는 나에게/어느 날/예쁜 영양사가 웃으며 말했다//물도/음식이라 생각하고/천천히 맛있게 씹어서 드세요//그 이후로 나는/바람도 햇빛도 공기도/천천히 맛있게 씹어 먹는 연습을 하네/고맙다고 고맙다고 기도하면서//때로는 삼키기 어려운 삶의 맛도/씹을수록 새로운 것임을/다시 알겠네
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