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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이 사람/“희미한 빛의 기억, 상상력으로 되살렸죠”

입력 | 2009-12-04 03:00:00

시각장애 영화감독 노동주 씨
‘한나의 하루’로 인권영화대상




“25년 동안 보아온 모습에다 상상력을 덧씌우는 작업이 정말 재미있어요.” 1급 시각장애인이 눈 먼 아이의 고달픈 하루를 다룬 작품으로 인권영상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국내 시각장애인 영화감독 1호인 노동주 씨(27·사진)가 주인공. 노 씨는 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최근 주최한 ‘2009 인권영상공모전’에 ‘한나의 하루’라는 작품으로 31개 경쟁작을 누르고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한나의 하루’는 23분짜리 중편 극영화로, 앞을 못 보는 한나가 토요일 낮 외출해서 겪는 일상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담아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15명의 제작진과 단역배우를 포함한 배우 30여 명은 모두 노 씨의 지인들이다. 주인공인 임하나 씨(19·여)는 노 씨처럼 1급 시각장애인이다. 노 씨는 임 씨를 시각장애인학교인 광주세광학교에 만났다.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 씨는 시력을 잃은 뒤 2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지만 영화는 이번이 처음. 60분짜리 필름을 5개나 쓰고서야 23분짜리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희미한 빛 정도만 볼 수 있는 탓에 제작진의 도움이 컸다. 노 씨는 화면을 볼 수 없어 카메라감독에게 한 컷 한 컷을 설명하고 촬영하도록 했다. 극중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배우들과도 대화를 많이 나눴다. 시나리오를 직접 쓴 노 씨는 “제작진과 연기자 모두가 무보수로 참여하고 도와줘 첫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며 “하나의 꿈을 이뤘다는 뿌듯함보다 미안함이 더 많다”고 말했다.

노 씨는 2년 전 시력을 잃었다. 고교 2학년 때 희귀병인 ‘다발성경화증’을 앓기 시작해 검정고시를 거쳐 조선대 환경공학과에 입학했으나 1년 만에 한쪽 눈을 잃었다. 희미한 빛에 의지해 토익(TOEIC) 980점을 받아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지만 번번이 면접에서 낙방하는 아픔을 겪었다. 졸업 무렵 나머지 한쪽 시력마저 잃은 그는 우연히 시청자미디어센터를 찾았다가 영상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키웠다. 어릴 적부터 ‘영화광’이던 그는 6mm 카메라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하게 됐다. 그는 다큐멘터리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겠습니까’를 제작해 ‘2008 인권영상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노 씨는 “상금 200만 원은 위암으로 투병 중인 어머니의 병원비로 사용할 계획”이라며 “여력이 된다면 장편 멜로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어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시상식은 10일 광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세계인권선언 제61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열린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