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이가 드디어 내 팔에 앉았다. 이제 내 주소와 이름을 적은 시치미를 꼬리에 달고 들판으로 꿩 사냥을 나갈거다. 그림 제공 사파리
◇매 나간다/이승 글·고광삼 그림/34쪽·9800원·사파리
할아버지와 매를 받기로 한 날 가슴은 콩닥콩닥, 어깨는 들썩들썩, 콧노래는 흥얼흥얼. 할아버지를 따라 산을 굽이굽이 넘어 탁 트인 곳에 다다랐다. 막대기를 세우고 그물을 매달아 매장(매를 잡기 위해 쳐 놓은 그물)을 만들었다. 풀과 나뭇가지로 매막(매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매장에 매가 걸렸는지를 확인하는 움집)도 만들었다. 매장 아래에 산비둘기를 놓고 매막에 숨었다. 몇 시간을 기다리니 ‘삐익삐익’ 매 울음소리가 들렸다. 마른침을 꼴깍 삼키고 산비둘기 다리에 묶어 둔 줄을 툭 잡아당겼다. 드디어 매를 받았다.
할아버지는 “보라매(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매)라며 훈련시키기에 좋다”고 말하셨다. 나는 매를 ‘수진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수진이는 가슴에 검갈색 깃털이 보송보송 나있어 사랑스러웠다.
산등성이에 올라 사냥을 나선 날, 강아지 번개가 꿩을 발견했다. 나는 수진이를 날리며 소리쳤다. “매 나간다.” 수진이가 날아간 방향으로 정신없이 뛰어가다 그만 산비탈 아래로 구르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할아버지가 곁에 있었다. 수진이는 산 속 멀리 날아가고 없었다.
며칠 동안 내리던 눈이 그치자 들판에 나가 ‘호우, 호우’ 수진이를 불렀다. 거짓말처럼 수진이가 내 팔로 날아왔다. 기뻐서 펄쩍펄쩍 뛰었다.
1년이 지나자 수진이는 이제 어른 매가 됐고 내 키도 훌쩍 자랐다. 다시 사냥을 나갔다. 어디선가 꿩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수진이를 날리며 다시 소리쳤다. “매 나간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