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교토’ 5대 관전포인트 ①의미있는 결과? 협상문안중 1000여 부분서 이견… 합의 불투명 ② 美-中 힘겨루기 美 “현장방문”에 中 “집약도 45% 감축” 비켜가 ③ 개도국 지원은 ‘기술이전-재정지원’ 요구에 선진국선 확답 없어 ④ 조건의 덫 제거? 日-EU-호주 “개도국 동참” 등 몽니 계속할듯 ⑤ 이벤트성 시위 회담장 쇠사슬 봉쇄… 수백개 탁상시계… 이번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2012년 이후의 온실가스 감축과 관련된 국제적인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이다. 각국은 올해 3월부터 다섯 번에 걸쳐 독일과 스페인 등지에서 협상을 해 왔다. 이 결과 코펜하겐에서 논의할 200쪽에 이르는 협상 문안이 마련됐다. 여기엔 각국이 제안한 모든 내용이 포함돼 있으며 합의가 안 된 부분엔 괄호가 쳐져 있다. 그런데 이 괄호의 수가 1000여 개에 이른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려면 괄호를 모두 없애서 30쪽 정도인 교토의정서 수준의 문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 회의에서 끝내기에는 사실 벅차다”고 말했다.
○ 핵심은 비켜가는 미국과 중국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두 나라인 미국과 중국의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9일 코펜하겐에 잠시 들러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17%의 감축 목표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90년에 비해서는 3% 감축하는 수준이어서 교토의정서에서 당초 미국에 요구됐던 감축 수준보다도 낮다.
오바마 대통령이 코펜하겐 방문 계획을 밝히자 중국도 처음으로 감축 목표를 언급하며 구체적인 수치를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절대치 목표도 아니고 배출전망치(BAU) 대비도 아닌 ‘탄소집약도(국내총생산·GDP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라는 어려운 개념을 들고 나왔다. 2020년까지 2005년 대비 탄소집약도를 40∼45%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탄소집약도는 GDP 대비이기 때문에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할 경우 탄소집약도가 줄어들어도 탄소 배출량 자체는 늘어날 수 있다.
양국이 코펜하겐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쏠려 있지만 협상이 타결될 정도의 획기적인 태도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문제는 역시 돈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으로부터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기술이전과 재정 지원을 원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역사적 책임이 있다. 반면 개도국들은 현재는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배출량이 많지 않다. 온실가스를 줄이기보다 당장 경제개발을 통해 성장을 하는 게 급하다.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선진국은 재산세를 낼 만큼의 부(富)를 이뤘지만 개도국들은 아직 소득세를 내는 수준”이라고 비유하고 있다.
○ 선진국들, 각종 ‘조건’ 떼어내나
일본은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1990년 대비 25% 감축하겠다고 밝혔지만 여기엔 ‘선진국과 주요 개도국들이 동참할 경우’라는 전제조건이 달려있다. EU와 호주, 뉴질랜드도 다른 나라의 동참 등 각종 조건을 내걸고 감축목표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의 무조건적인 감축 목표를 원하고 있다. 각국이 이번 회의에서 이런 전제조건들을 떼어낼지도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포인트다.
○ 아이디어 만발 시위대
11월 스페인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선 한 시민단체가 회담장을 쇠사슬로 둘러싸는 퍼포먼스를 했다. 각국 대표들이 합의하기 전에는 나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마치 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들의 회의인 ‘콘클라베’를 연상시키는 이벤트였다고 한국 협상단 관계자는 전했다. 수백 개의 탁상시계를 회담장 로비에 늘어놓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경고를 하거나 얼음동상을 세워놓고 녹아내리게 만드는 등 환경단체 시위대의 아이디어는 다양하다. 협상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도 기발한 시위 아이디어가 대거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2도냐 6도냐
방치 땐 금세기말 기온 6도 치솟아 대재앙
감축해도 2도↑… “더는 타협할 때 아니다” ▼
2012년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 이후의 세계 기후 질서를 결정할 코펜하겐 기후회의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은 7∼18일을 ‘지구를 구할 2주일’이라고 부른다. 회담이 실패할 경우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 폭풍 홍수 가뭄 열파 등 재앙으로 이어지고 지구 곳곳에서 대량 이주와 이로 인한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회담이 성공한다 하더라도 큰 변화가 예상되기는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은 자국의 경제 구조를 친환경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많은 과학자가 2012년을 1년 남짓 남기고 열리는 이번 회의에서는 더는 타협이 있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명한 기후학자이며 미국항공우주국(NASA) 고다드 우주연구소장인 제임스 한센 박사는 2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온난화는 링컨이 직면했던 노예제도 문제나 윈스턴 처칠이 직면했던 나치즘의 문제와 유사한 것”이라며 “타협점을 찾아 노예제도를 50%, 혹은 40% 줄이자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번 회의는 세계 각국의 협상가들이 주최 측인 덴마크가 작성한 초안을 바탕으로 회의에 회의를 거듭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16일이다. 이날 새로운 기후 질서의 윤곽이 드러난다. 이 초안을 놓고 92개국 정상들이 17, 18일 결론을 낼 예정이다.
파리=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한국=자율감축 선도국’ 이미지 공세
감축 의무 없는 개도국 지위 유지전략
2005년 한국 배출량 세계 16위
EU “선진국 포함시켜야” 주장 ▼
미국 중국보다는 덜하지만 한국도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국제적 관심을 받고 있다. 경제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개발도상국’에 포함됐지만 개도국 중 처음으로 온실가스 자율감축 목표를 세운 나라라는 점에서 찬사를 듣고 있다.
교토의정서는 세계 각국이 자발적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2개 범주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선진국은 온실가스 감축의무국(Annex I)이고 개도국은 온실가스 감축의무국이 아니다(Non-Annex I). 한국은 스스로를 개도국으로 분류했다. 따라서 최소한 교토의정서가 끝날 때까진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없다.
그러나 유럽을 중심으로 “한국을 선진국으로 분류해 의무감축국에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돼 있고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는 점 때문이다. 한국이 뿜어내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이런 수준에 근접해 있다. 2005년 한 해 동안 배출량이 5억9400만 t으로 세계 16위를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달 개도국 가운데 처음으로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추정 배출량(BAU)의 30%까지 줄이겠다”고 수치를 제시하며 자율감축 의지를 세계에 발표했다. 국내 경제단체들은 “달성하기 부담스러운 수치”라고 반발했지만 그 덕분에 한국은 의무감축국 포함 논란에서 한 발짝 멀어졌다. 특히 중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주요 개도국이 자율감축 목표를 잇달아 발표하면서 “한국이 개도국의 변화를 촉발하고 있다”는 호평도 일부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번 코펜하겐 회의에서 ‘한국=온실가스 자율감축에 앞장서는 개도국’이라는 인식을 굳힌다는 방침이다. 개도국 지위는 유지하되 ‘자율감축’에 방점을 찍어 선진국에 맞먹는 의무를 다하겠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회의장에서 ‘개도국 감축행동 등록부’ 마련도 제안할 예정이다. 개도국이 감축한 온실가스 양을 이곳에 공개할 경우 국제사회가 공식적으로 감축량을 인정하고 이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자는 아이디어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