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의 탄생/이광주 지음/840쪽·2만7000원·한길사
“그리스인의 이름은 이제 출생의 이름이 아니라 정신의 이름으로 생각되고, 교양을 나누는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인으로 불리게 되었다.”
페리클레스는 이렇게 수천 년 전의 고대 그리스를 교양의 탄생지로 정의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몽테뉴, 토머스 모어, 루소, 괴테, 에밀 졸라…. 고대부터 현대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서양사 속 교양의 역사를 짚어낸 책이다.
중세는 흔히 암흑의 시대라는 오해를 받아왔다. 그러나 저자는 “성서가 상징하듯이 그리스도교는 문자의 종교, 지적 종교”라고 말한다. 특히 파리, 볼로냐, 옥스퍼드 등에 있었던 중세 대학은 수도원학교와 주교좌성당학교가 발전한 지적 전통의 집합소였다. 저자는 당시 대학이 “자유로운 토론에 의한 탐구, 개인 스스로 인식하는 지(知)의 단련, 그리고 학문에 대한 논의,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하는 학풍이라는 유럽의 지적 전통을 쌓아올렸다”고 평가한다.
대학이 국가권력에 편승하면서 화려했던 지적 전통의 중심은 도시와 궁정으로 옮겨간다. 특히 귀부인과 기사의 사랑을 노래하는 시인들의 작품과 당대 사교문화는 “여성에 대한 섬세한 마음가짐”이라는 서양 특유의 유럽적 교양인의 덕목을 낳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교양인은 ‘폭넓은 독서와 고전연구를 바탕으로 다방면에 재능을 갖춘 인간’으로 정의됐다. 대화와 담론을 즐기는 살롱의 전통도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당대 최고의 교양인이자 지식인으로 우상을 늘 경계했던 에라스뮈스는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자유’를 교양인의 또 다른 조건으로 만들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계몽주의’가 탄생한다.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서의 계몽주의는 곧 교양의 수혜자를 좀 더 많은 이에게로 넓히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이끌어내 프랑스혁명이 태동했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이때의 지적 전통은 드레퓌스 사건이나 ‘68년 학생운동’에서도 알 수 있듯 현대 유럽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