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BBC CNN 등 샅샅이 뒤지며 구체적 자료준비
[수비] 예상되는 반대주장-반박 따로 정리, 실전연습 또 연습
《토론 준비를 할 땐 상대의 생각을 뛰어 넘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기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상대가 내 주장에 대해 어떤 반론을 펼치고 또 나에게 어떤 질문을 할 것인가’를 예상한 뒤 자기 주장을 옹호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에게 허를 찔려 토론 도중 자기 논리가 무너진다.이는 서울 일원초등학교 5학년 장한별 양(사진)의 토론 노하우다.》
1만3463명 물리치고 초등 고학년 부문 대상 장한별 양
결선 토론 주제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에이즈) 치료를 위한 개발도상국의 의약품 복제’. 장 양은 ‘백신 불법복제는 약을 개발한 다국적 기업 또는 선진국의 저작권을 침해한다’ ‘복제약 사용이 많아지면 새로운 백신 개발과 연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줄어들 것이다’란 근거를 들어 의약품 복제를 반대하는 주장을 폈다.
“에이즈로 세계의 많은 사람이 죽는다”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같은 찬성 주장에 대해선 “신약 복제는 돈을 훔치는 것과 같은 불법행위다. 목적을 위해 수단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 “아픈 사람을 방치하는 게 도덕적으로 옳지 못한 것이라면 법을 위반하는 행위도 비도덕적이긴 마찬가지”라는 논리로 상대 주장을 반박했다.
짧은 시간 내에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고 상대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토론실력을 장 양은 어떻게 키운 걸까?
장 양은 6세 때 영어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영어공부를 시작했다. 유치원생 때부터 ‘매직 트리 하우스(Magic Tree House)’ 시리즈, ‘웨이사이드 스쿨(Wayside School)’ 시리즈처럼 단계적으로 수준이 높아지는 스토리 북을 읽으며 어휘력과 독해실력을 쌓았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여 200쪽 이상의 스토리 북을 읽게 됐을 땐 책의 줄거리, 주인공의 성격, 주요 사건처럼 핵심만 이야기하는 습관을 들였다. 등장인물이 많고 일어나는 사건도 다양해 주요 정보만 콕콕 짚어내지 않으면 설명이 불가능했기 때문. 이런 연습은 결과적으로 방대한 자료를 읽고, 그 속에서 토론에 필요한 정보만 쏙쏙 골라내는 실력을 키우는 데 주효했다.
장 양은 초등학교 3학년 1학기 초부터 영어전문학원에 다니며 실력이 비슷한 학생들과 영어토론을 했다. 처음엔 ‘공공장소에서의 흡연’ ‘교복 착용’ ‘외국어 조기교육’처럼 찬반이 극명히 갈리는 주제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놓고 토론했다.
토론 주제가 정해지면 장 양은 일단 찬성, 반대 의견 중 하나를 정하고 신문, 백과사전, 인터넷을 활용해 자기 주장을 뒷받침할 자료를 찾았다. 자료를 찾을 땐 토론주제를 다시 여러 개의 특정 주제로 세분해 구체적인 정보들을 찾는 데 주력했다. 예를 들어 ‘흡연에 대한 찬반 토론’에서 ‘반대’ 주장을 펴기로 정했다면, ‘흡연은 폐암을 일으킨다’란 일반적인 자료를 근거로 내세우기보다 ‘간접흡연의 폐해’ ‘폐 건강’ 등으로 범위를 좁혀 새롭고 의미 있는 자료를 찾아 근거로 제시했다.
장 양은 영국의 BBC 방송과 미국의 CNN 홈페이지를 주로 이용했다. 해외 뉴스엔 논란이 되는 사회 이슈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나 연구 결과, 다채로운 통계자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객관적 자료는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유리한 ‘방패’ 역할을 했다.
자기주장에 대한 정리가 끝나면 상대가 어떤 주장을 펼지, 그에 대한 근거로는 어떤 사례를 들지를 예상했다. 그 뒤 상대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자료를 별도로 찾아 정리했다.
이렇게 작성한 노트를 장 양은 실전 대비용 ‘가상 시나리오’로 활용했다. 이 노트를 가족들 앞에서 여러 번 읽으며 실전훈련을 했다. 발표할 내용이 입에서 술술 나올 때까지 연습해야 실전에서 떨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장 양은 ‘환경보호와 경제 개발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처럼 국제, 사회적 이슈를 토론주제로 삼아 연습했다. 이땐 상대방의 주장을 경청하고 옳은 부분에 대해선 인정하는 토론예절을 몸에 익히는 데 주력했다. 이런 주제에선 ‘양쪽의 주장을 절충해 대안을 모색하자’는 중립적인 주장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 양은 “다른 사람의 주장을 존중하는 자세도 토론대회에선 중요한 평가대상이 된다”면서 “상대방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자세, 상대의 주장을 인정하는 자세도 연습을 통해 몸에 익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