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연구 통해 우리 문화 정체성 찾지요”
무속 연구 모임 ‘한판 벌립시다’ 회원들이 경기대 국문과 박사과정 시지은 씨(앞줄 오른쪽)가 발표한 지노귀굿에서 망자를 사후세계로 인도하는 과정인 ‘사재삼성거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이종승 기자
“‘이집트 사자(死者)의 서(書)’와 한강 이남 경기지역 새남굿에서 읊는 ‘죽음의 말’은 둘 다 사후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영생을 바라는 인간 욕망을 담아낸, 뛰어난 텍스트입니다. 사자의 서가 부활에 초점을 맞춘 데 비해 죽음의 말에는 부활의 개념이 없다는 게 다르죠. 후손의 출생을 부활로 본다는 점에서 죽음의 말에는 유교적 관념이 틈입한 것으로 보입니다.”(김헌선 경기대 국문과 교수)
“언어를 사물과 동격으로 여기는 게 두 주문의 공통점입니다. 20세기 초반 소쉬르 언어학이 소개되기 이전에는 대상과 언어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무속과 신화의 세계에서 특히 그런 경향이 강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신연우 서울산업대 문예창작과 교수)
5일 오후 2시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경기대 서울캠퍼스 대학원 세미나실에 인류학자, 종교학자, 언어학자 20여 명이 모였다. 무속(巫俗)을 연구하는 ‘한판 벌립시다’의 월례 모임이었다.
토론자로 나선 김은희 고려대 응용언어문화학협동과정 박사는 “죽음의 말에는 이승과 저승만 존재하지 극락과 지옥의 개념이 없다”며 “고구려 벽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에는 죽음을 둘러싼 선악, 심판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혜정 성균관대 독문과 강사는 “신인(神人) 오시리스가 죽은 자의 사전(死前) 행적을 묻고 심판하는 사자의 서는 고조선의 8조 금법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전문위원은 “오시리스는 중생을 교화, 구제하는 불교의 지장보살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후세계 두려움-영생의 욕망 등
외국의 죽음관과 비교 연구도
지역별 굿 연구 통합 2001년 출범
무속인과 생활하며 연구하는 학자도
이 모임은 2001년 출범했다. 학계의 굿 연구가 서울, 동해안권 등 지역별로만 진행돼 온 탓으로 통합연구가 필요하다는 데 학자들이 공감했고 김헌선 교수가 주도했다. 그동안 무가(巫歌), 무무(巫舞) 등 굿에서 파생된 문화유산과 굿의 유형을 연구했고 굿 현장도 여러 차례 답사했다. 모임에는 이용범 서울대 종교학과 강사, 허용호 고려대 연구교수 등 20여 명이 늘 참여한다. 회원 중 무속인과 생활하며 무속을 연구하는 학자도 있다. 경기도 일대 무속인들의 모임인 경기도당굿의 변남섭 사무국장은 직접 굿에 참여하기도 한다.
김헌선 교수는 “모임의 정해진 주제와 회원 제한은 없다”며 “앞으로 이 모임에서 세부 분야의 전문가가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태한 중앙대 국악교육대학원 대우교수는 “서울 굿에 관해 10여 년 연구해왔는데 현대화한 국가 중 우리처럼 무속활동이 활발한 나라는 드물다”며 “인류의 문화적 원형을 간직한 무속 연구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