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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연예인 되기]공교육에 부는 대중예술고 열풍

입력 | 2009-12-07 12:10:43


한림연예예술고 실용무용과 비보이 팀의 역동적인 군무.

"오늘 수업은 '스와왑스'다!"

지난달 17일 오후 6시 서울 송파구 장지동 한림연예예술고의 한 교실. 인문계 고교에서 '야자(야간자율학습)'가 시작할 무렵이지만 이곳에서는 강한 비트의 댄스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이날 수업의 강사는 모자를 삐딱하게 눌러 쓴 국내 유명 비보이팀 'T.I.P'의 멤버 김정원 씨(27). 김 씨가 손으로 바닥을 짚고 다리를 공중으로 띄우며 열 바퀴를 돌자 '우와' 하는 소리와 함께 박수가 쏟아졌다.

한림연예예술고에서는 이른바 '국영수'를 잘하는 학생보다 춤과 연기에 뛰어난 학생이 모범생으로 인정받는다. 이 학교 뮤지컬학과에 다니는 민경하 군(16)은 중학교 때 반에서 20등에 머물던 평범한 학생이었지만 교내 뮤지컬 오디션에서 1등을 거머쥐면서 학교를 대표하는 학생으로 꼽힌다.

연예 산업이 성장하면서 공교육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연예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크게 늘면서 '연예인 사관학교'를 자처하는 대중 예술 관련 고교들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올 초 첫 신입생을 선발한 한림연예예술고를 비롯해 지난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인가를 받은 예술고는 3곳에 이른다. 실용음악과를 운영해오던 아현산업정보학교는 올해 방송연기과를 신설했다. 리라아트고는 올해부터 실용음악과를 1학급에서 2학급으로 늘리는 등 기존 학교들도 선발 규모를 늘리고 있다.


●오디션 열어주는 예고

치솟는 입학 경쟁률은 대중 예술 관련 고교의 뜨거운 인기를 반영한다. 올해 2.5대 1의 입학 경쟁률을 보인 한림연예예술고는 내년(2010년 입학 예정) 경쟁률이 10대 1을 넘어섰다.

서울 은일정보산업고는 서울공연예술고로 교명을 바꾸며 내년 신입생 평균 경쟁률이 2.3대 1을 나타냈다. 공연예술과의 보컬 및 연기 전공부문은 경쟁률이 4대 1까지 치솟았다. 정보산업고 시절인 2008년 경쟁률은 1.2대 1에 그쳤었다.

연예 관련 고교가 뜨는 것은 대중문화나 연예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달라진 영향도 크다.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예술고 간다는 편견은 점차 무너지고 있다.

아현산업정보학교 학생들은 수업을 마친 뒤에도 합주실에서 연습에 매달린다.

아현산업정보학교 방송연기과 김아름 양(18)은 혜화여고 2학년 때까지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던 모범생이었다. 부모님은 딸이 교사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김 양은 과감히 위탁교육기관인 아현산업정보학교에 지원했다.

김 양은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억누르고 있던 연극배우의 꿈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일부 예술고에서는 교사들이 직접 학생들의 연예계 진출을 컨설팅해주기도 한다. 한림연예예술고도 그 중 하나. 이 학교는 그뿐 아니라 외부 기획사를 초청해 오디션을 열기도 한다.

몽골 출신인 한림연예예술고 실용무용과 이류린 양(18)은 교내 오디션을 통해 가수 이승기가 속한 '로엔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선발됐다.

이 양은 "길거리에서 받는 기획사 명함은 꺼림칙해서 찾아가기를 망설였지만 학교가 주선하는 오디션은 신뢰할 수 있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예술계 고교의 인프라는 빈약

리라아트고 실용음악과 2학년 여학생들로 구성된 밴드 ‘언타이틀’.

공교육 부문에서 연예 관련 고교가 늘어나는 것은 연예 산업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연예계 데뷔 시기가 점차 어려지면서 중고교 때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리라아트고 1학년에 입학해 기획사 오디션을 통과한 아이돌 그룹 F(x)의 루나(본명 박선영)는 "일찌감치 가수를 꿈꿔왔기 때문에 인문계 고교 진학은 부담스러웠다"며 "가창력을 키울 수 있는 학교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예술계 고교가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단기간에 최고 수준의 장비와 강사를 갖추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SNT 실용음악원 권용일 부원장은 "실용음악과라고 하지만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예술고는 많지 않다"며 "예술계 고교를 다니는 연예인 지망생들의 상당수는 (연예계 데뷔를 위한) 사교육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평론가인 조진표 씨는 "공교육이 인문계 고교에서 소외된 채 연예 기획사 앞을 서성일 학생들을 흡수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아이들이 미래 직업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예고로 몰려들지 않도록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특별취재팀
김유림 수습기자 rim@donga.com
김철중 수습기자 tnf@donga.com
박혜림 수습기자 inourtime@donga.com
박훈상 수습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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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 수습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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