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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추기경의 사랑, 아프리카의 빛으로

입력 | 2009-12-08 03:00:00

金추기경 각막이식 집도醫
“큰사랑에 감동, 봉사 결심”
케냐 백내장 어린이들에 인술
올 장기기증 서약 17만8000명
작년의 2.4배로 폭발적 증가




“그건 M, 그건 E, 음…. 아산테 사나(고맙습니다) 닥터, 아산테 사나.”

2일(현지 시간) 케냐 케리초 시의 케리초지역병원. 양 눈에 덮여 있던 붕대를 풀자 10세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이매뉴얼 제베 군(13)의 눈에 사물의 빛, 형태, 색채가 다시 나타났다. 전날까지만 해도 뿌연 백내장으로 가로막혀 있던 수정체를 지나 낯선 동양인의 웃는 얼굴 모습이 제베 군의 망막에 또렷이 맺혔다. 시력 측정표를 읽어가던 제베 군은 감격에 겨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는 스와힐리어로 ‘아산테 사나’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제베 군의 눈앞에 나타난 낯선 동양인은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안(眼)센터장인 주천기 교수(53). 저개발국가 아동구호단체 ‘월드쉐어(WorldShare)’가 진행하는 ‘아프리카에 희망의 빛을’ 의료봉사활동에 참가한 주 교수는 백내장을 앓는 케냐 어린이들을 수술해 주기 위해 서울에서 15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그는 1일 현지 의사 2명과 함께 저시력이거나 완전 실명(失明) 상태인 생후 5개월∼18세의 18명을 수술해 ‘빛’을 선물했다.

주 교수는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각막 이식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다. 그가 해외봉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부끄럽습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며 봉사를 제대로 못했으니 실명한 거나 마찬가지죠. 김 추기경님의 선종 뒤 각막 기증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작은 힘이나마 어려운 이웃에게 보태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케냐의 의료사정은 열악했다. 수술 도중 전등이 수차례 꺼졌다가 20∼30초 지나 다시 들어오곤 했다. 마취과 의사가 보는 ‘바이털 사인’ 모니터가 꺼지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지혈을 부탁하니 나를 보조하던 의사가 ‘파이어(fire·불)’라고 말하더군요. 간호사가 못 같은 쇠꼬챙이를 불에 달군 뒤 의사에게 건네니 절개한 각막의 출혈 부위에 대고 지졌어요.”

수술용 메스마저 무뎠지만 주 교수는 노련한 솜씨로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주 교수는 “마치 우리나라 30년 전 시골병원이나 야전병원 수준이었다”며 “올해 현지 의료 환경을 알았으니 내년에는 꼼꼼히 준비해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아낌없는 나눔’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주 교수뿐만이 아니다. 7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NOS)에 따르면 올해 1월∼12월 6일 전국의 병원 및 공인장기기증등록단체 등에 접수된 장기기증 희망자는 17만8000여 명으로 지난해(7만4841명)의 2.4배 규모로 늘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케리초(케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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