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손자처럼 돌봐주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성공하고 싶어요”
저는 경남 김해시에 사는 부산 국제영화고 2학년 박새빈(17)입니다. 누나 여동생과 함께 돌아가신 할머니의 친구분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집을 나가고 할머니가 3년 전 돌아가신 뒤 저희를 가족처럼 보살펴 주는 고마운 분입니다.
제 꿈은 가수입니다. 가수라는 꿈이 부끄러웠던 적도 있어요.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될까 봐 목표도 없이 방황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저희 남매를 거두어 주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누나와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잘한다는 칭찬도 많이 받았고, 친구 손에 이끌려 기획사 오디션에 갔다가 5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입상한 적도 있어요. 새벽에 신문 배달을 하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번 돈으로 학원에서 기타를 배우고 있어요. 요즘에는 아르바이트보다 학교 공부에 더 신경 쓰라고 ‘짠순이’ 누나가 학원비를 내주고 있어요.
■ ‘우상’ 이승철 씨 조언
“가수보다 뮤지션을 꿈꾸렴”
조바심 내면 큰 가수 못 돼… 좋은 음악 들으며 내공 쌓아야
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가수 이승철 씨의 콘서트에서 박새빈 군(왼쪽)이 이 씨를 만났다. 이 씨는 가수를 꿈꾸는 박 군에게 “너는 이미 확고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기여하고 있다”며 등을 두드렸다. 인천=이종승 기자
아직도 음악소리가 새빈이의 귓가를 맴돌던 다음 날 오후. 새빈이는 이 씨의 생일파티 준비가 한창인 선상카페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이 씨는 매년 팬클럽 ‘새침떼기’와 생일을 같이 보내고 있다. 데뷔한 지 24년째. 소녀였던 팬들은 이제 ‘새침떼기’란 이름이 쑥스러운 나이가 됐을 만큼 오래된 친구다.
새빈이는 용기를 내 이 씨 앞에서 가수 이적의 ‘그땐 미처 알지 못했지’라는 노래를 불렀다. “목이 쉬었네?” 오디션으로 가수를 뽑는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이 씨의 거침없고 날카로운 비평을 걱정했던 새빈이가 침을 꼴깍 삼켰다. “지금은 노래를 많이 부를 때가 아니라 들어야 할 때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은 음악을 많이 들으면 나중에 큰 재산이 돼.”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의 빌보드 차트를 줄줄 외우고 다녔다는 이 씨의 경험담에 새빈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씨는 직접 노래를 부르며 발성의 차이를 설명했다. 이 씨는 진성(眞聲) 가성(假聲) 반가성(半假聲)을 넘나들었다. 발음에 대한 꼼꼼한 지적도 이어졌다.
이 씨는 “아직 어린 나이에 맹목적으로 한 가지만 생각하기보다는 다각적으로 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가수보다는 뮤지션이 되겠다는 넓은 시각으로 준비를 해야 해. 요즘 학생들은 음악이 좋으면 무조건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만 꿈꾸는데 가수 말고도 음악과 함께할 수 있는 직업이 얼마든지 있어.” 새빈이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한 시간 때문에 조급해했다.
“너는 이미 확고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있어. 나중에 성공해서도 꼭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라.” 첫 만남 때만 해도 어깨가 처져 있던 새빈이는 이 씨와의 만남을 끝내고 돌아가며 가슴을 활짝 폈다. “당장 내일부터 학교 시험공부도 열심히 하고 악기 연주도 배워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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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