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후 빚더미 영세업자들 신용불량 전락… 은행거래 막혀신보재단, 약식심사 거쳐 보증서7∼8% 금리로 2000만원까지 대출
#1 전남 순천시에서 남편과 함께 간판업을 하는 김모 씨(37)는 지난해 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3000만 원 규모의 공사를 다해놨는데 업주가 부도를 내고 공사대금을 못주겠다는 것이다.
11년 전 악몽이 떠올랐다. 본래 간판업을 했던 김 씨 부부는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고 빚보증마저 잘못 섰다가 전 재산을 날렸다.
아무 연고도 없는 순천으로 이사 온 부부는 한 간판업체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알뜰살뜰 돈을 모았고 2003년 마침내 조그마한 간판가게를 다시 열었다. 개업 후 6년이 지나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는데 또 빚더미에 올라앉을 위기가 터진 것이다.
#2 최윤선 씨(57·경남 양산시)는 여름에는 옥수수빵, 겨울에는 붕어빵을 파는 노점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벌이는 시원찮은데 카드 빚이 불어나면서 최 씨는 파산 위기에 빠졌다. 어렵게 모아온 적금과 생명보험을 모두 해약했지만 카드 빚과 이자를 갚고 나니 남는 것은 전혀 없었다. 다시 시작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지난해부터 방충망 설치 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당장 자재와 공구를 살 돈조차 없었다. 신용등급이 최하위여서 은행은 물론이고 제2금융권에서도 대출이 어렵다고 했다.
최 씨는 올해 초 이웃의 소개로 신용보증재단을 알게 됐고 300만 원을 지원받았다. 이 돈으로 방충망 설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틈틈이 인테리어 기술을 배우고 있는 최 씨는 내년부터는 욕실 인테리어 공사도 시작할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전체의 31.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이 중 제도권 금융으로부터 금융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저신용등급인 7∼10등급 비중이 21.8%에 이른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저신용등급 자영업자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신보재단 관계자들은 자금 지원을 받은 영세자영업자들의 재활 의지가 강하다고 전한다. 고마운 마음 때문에 빌린 돈을 꼭 갚으려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신용보증재단이 영세자영업자에게 보증해준 대출금 가운데 부실이 생겨 재단이 대신 갚아준 비율(대위 변제비율)은 1.3%였다. 이는 기업 위주로 보증을 하는 기술보증기금이 집계한 대위 변제비율(3.8%)의 3분의 1 수준이다. 영세자영업자들이 일반 기업보다 상환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최 씨는 “남들에게는 300만 원이 큰돈이 아닐지 몰라도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삶의 희망이 됐다”며 “지금은 월 2만 원대의 이자만 갚고 있지만 열심히 일해 원금도 빨리 갚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 특례보증 받으려면
9개 금융회사 중 1곳에 신청
대출 받기까지 1주일 안걸려
신용보증재단이 운영하는 ‘금융소외 자영업자 특례보증’은 신용도가 6등급 이하인 사업자가 연 7.3% 안팎의 금리로 300만∼2000만 원을 대출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올해 1월부터 1조2500억 원의 재원으로 시작된 이 보증은 현재 한도가 3000억 원가량 남았다. 신용보증재단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정도면 한도가 소진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례보증으로 대출을 받으려면 재단을 방문할 필요 없이 농협, 신협, 새마을금고, 경남은행, 광주은행, 대구은행, 부산은행, 전북은행, 제주은행 등 9개 금융회사 중 1곳에 신청하면 된다. 사업자등록증(또는 무등록 소상공인 확인서), 주민등록등본, 임대차계약서 사본, 금융거래확인서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한 뒤 신용등급 조회와 약식심사를 거쳐 보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보증 신청부터 대출까지 7일이 채 걸리지 않는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