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세상이 혼란스러울 때는 세속을 아예 떠나라. 둘째, 한 나라나 한 지역이 혼란스러우면 그곳을 떠나라. 셋째, 군주의 용모나 태도가 예의를 벗어나면 그 군주의 곁을 떠나라. 넷째, 군주에게 諫言(간언)을 해도 군주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 군주의 조정을 떠나라. 伯夷(백이)나 太公(태공)이 은나라의 紂(주)왕을 피해 바닷가로 이주한 것은 세상을 피한 예이다. 나머지도 각각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벽,피)는 避(피)의 古字다. 본래 (벽,피)(벽)은 손잡이가 붙은 가느다란 曲刀(곡도)로 사람의 허리 부분을 자르는 형벌을 가하는 것을 뜻했다. 또 그런 형벌을 받은 사람은 몸을 구부정하게 취하게 되는데 무언가를 피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그래서 (벽,피) 자체에 避한다는 뜻이 있었다. 그런데 (벽,피)가 형벌 이외에 임금이란 뜻으로도 사용되자 사물을 피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로 避가 새로 만들어졌다. 한문 문헌에서는 옛 글자와 새 글자를 한데 섞어 쓰기도 한다. 여기서는 뒤에 나온 避를 쓰지 않고 옛 글자인 (벽,피)를 사용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