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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 9명 섬마을에 美유학파 영어선생님

입력 | 2009-12-11 03:00:00

영화 ‘섬마을 선생’ 무대 인천 대이작도 이작분교
김봉천 이경 방과후 무료수업… “가족처럼 지내요”



이작분교 학생들과 김봉천 이경(왼쪽)이 수업을 끝내고 대이작도 나루터 옆 바위에 모였다. 전교생이 모두 9명이지만 이날 2명이 뭍에 나가 7명만 학교에 나왔다. 학생들 뒤로 영화 ‘섬마을 선생’에 등장한 ‘문희 소나무’가 보인다. 대이작도=황금천 기자


8일 오후 2시경 인천 옹진군 자월면 대이작도 선착장에서 300여 m 떨어진 인천남부초등학교 이작분교. 1945년 문을 연 이 학교는 전교생이 고작 9명에 불과한 ‘미니’ 분교다. 실내화를 갈아 신고 교실에 들어가 보니 7명이 원형 책상에 둘러앉아 자율학습을 하고 있었다. 전교생의 맏언니로 통하는 김가람 양(12)이 동생들 사이를 바삐 오가며 문제지 푸는 것을 도와줬다. 분교장인 류인환 교사(40)는 “3명의 교사가 학생 3명씩 맡아 가르치기 때문에 한 가족과 다름 없이 지낸다”고 말했다.

연안부두에서 44km 정도 떨어져 있어 쾌속선을 타고 뱃길을 따라 1시간 반 남짓 가야 도착하는 대이작도에는 늘 ‘섬마을 선생’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로 시작하는 가수 이미자의 히트곡 제목을 따 1967년 제작된 영화 ‘섬마을 선생’(감독 김기덕)이 이 섬에서 촬영됐기 때문.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영화는 서울에서 의대를 휴학하고 내려온 총각 선생과 섬 처녀의 수채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당시 최고의 인기배우였던 오영일(총각 선생 분), 문희(섬처녀 분), 안은숙(총각 선생의 약혼녀 분), 김희갑 등이 출연했다.

영화를 촬영할 당시만 해도 주민이 400명이 넘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대이작도에는 주민 250여 명만 남았다. 영화의 주무대였던 ‘계남분교’는 1992년 문을 닫았다. 중고교가 없기 때문인지 도시에서는 그 흔한 영어학원이나 보습학원이 단 한 곳도 없다. 하지만 이작분교 학생들은 요즘 방과 후가 즐겁기만 하다. 그동안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지만 최근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선생님이 생겼다. 9월 인천중부경찰서 대이작초소에 발령받은 김봉천 이경(24)은 고교시절 중국과 영국에서 유학한 뒤 미국 뉴욕주립대 경영학과 3학년에 다니다 자원입대했다. 김 이경은 매주 월∼금요일 방과 후 2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테스트를 거쳐 학생들을 수준별로 3개 반으로 나눠 가르친다. 3학년 류혜림 양(9)은 “모르는 게 있어 학교 옆 초소에 가면 언제든지 선생님이 친절하게 가르쳐 준다”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갑자기 4학년 김근태 군(10)이 “대이작도에 왔으면 ‘문희 소나무’를 봐야 한다”며 기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배우 문희가 이 소나무에 기대서 총각 선생이 타고 떠나는 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교생 중 막내인 1학년 강바다 군(7)에게 섬 생활이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천진난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도시 친구들이 부러운 것은 없어요. 하지만 자장면과 햄버거를 파는 식당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히히….”

대이작도=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