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덩치, 촌스러운 로고, 가죽옷, 번쩍이는 장식…
100년이 넘은 오토바이 브랜드 할리 데이비슨은 처음에는 ‘거친 반항아’의 이미지로 유명했지만 브랜드가 나이를 먹으면서 ‘열정과 자유’, ‘자연에 대한 사랑’ 등의 이미지를 얻었다. 육중한 차체와 투박한 로고, 번쩍이는 가죽옷이 어울리는 제품 디자인 또한 현대사회에 맞춰 약간씩 단순화됐으나 고전적인 형태만은 그대로 간직했다. 세월과 디자인 사이의 상관관계다. 사진은 한국의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 ‘호그 코리아’. 동아일보 자료 사진
할리가 이런 명성을 갖게 된 배경에는 제품의 성능은 물론 독특한 브랜딩 전략이 있다. 쉽게 말해 그들은 모터사이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모터사이클 문화를 고객과 더불어 만들어 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한때 AMF라는 스포츠용품 업체가 할리 데이비슨사를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할리 데이비슨의 최대 위기는 바로 그 시기였지 일본 업체의 도전이 아니었다는 분석도 있다. AMF는 할리를 문화로 보지 않고 단순한 모터사이클로만 보았기 때문이다.
1981년 윌리 데이비슨과 본 베할이 할리를 인수하면서 현재의 명성은 다시 시작됐다. 당시부터 할리의 광고디자인을 책임졌던 데이나 아넷은 할리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일종의 모터사이클 공동체에 가입한다는 느낌을 갖도록 모든 브랜딩 전략을 수정했다. 이 전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할리 숍이나 정비소는 일종의 아크로폴리스처럼 꾸며져 누구나 마음대로 커피를 마시고 다른 고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할리는 이런 식으로 고객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개발하고 그곳을 통해 다양한 이벤트나 모임이 구성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사람 사는 일과 똑같다. 세월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라도 오랜 세월 지속되면 관습이 된다. 별 역할이 없는 존재도 오래 같이하면 동료가 된다. 모두 묵시적으로 공인을 받는 것이다. 이 점에 착안한다면 할리가 해야 할 일도 명확해진다. 바로 할리의 여러 특징들, 특히 좀 과장되고 튀는 디자인들을 다듬어 기본 골격을 유지한 채 현대성을 가미하는 것이다. 여기서 현대성을 가미한다는 것은 과거의 거친 이미지를 순치시키는 것이자 할리가 현대화가 필요할 만큼 오래된 브랜드라는 것을 묵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할리의 육중한 몸체, 심벌마크, 어찌 보면 촌스러운 독특한 로고서체, 가죽옷, 번쩍거리는 금속 장식 등 모든 시각적 요소를 기존 스타일을 고수한 채 부분을 단순화했다. 일제 모터사이클의 미래주의적이기까지 한 디자인과 달리 할리가 전형적인 형태를 많이 간직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단순히 제품 디자인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모든 광고, 팸플릿, 각종 프로모션 행사의 디자인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디자인 전략을 통해 오래된 것은 전통이자 클래식이 되어 갔다. 반항적 이미지는 열정과 자유를 갈구하고 투박하지만 우직하며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로 확대되고 공인되기 시작한 것이다. 소비자 스스로 자기 피부에 문신을 하는 브랜드는 아마 전 세계에서 할리 데이비슨이 유일할 것이다. 할리를 타는 우리 대학의 교수님도 이런 이미지에 신세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