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등 57명 피살… 빈민가 불… 반군단체 31명 탈옥
지난달 23일 정치인과 언론인 등 57명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참사를 겪었던 필리핀이 일시적 계엄령 선포와 빈민가 화재, 교도소 탈옥 등 연이은 악재로 술렁이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10일(현지 시간)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슬럼가에선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나 판잣집 1000여 채가 피해를 봤다. 7시간 동안 지속된 화재로 1세와 3세 유아 2명이 숨졌고 이재민 1만5000여 명이 발생했다. 이재민들은 천막과 인근 체육관 등 임시거처에 수용됐으나 대부분 열악한 극빈층이라 생계가 막막하다.
무장 괴한이 정부시설을 공격하는 사건도 벌어졌다. AP통신은 “13일 필리핀 남부 바실란 섬 이사벨라 시에 있는 정부 교도소가 공격당해 최소 31명의 죄수가 탈옥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교도관 1명과 무장괴한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슬람 게릴라로 추정되는 무장 세력은 이날 밤 총격전과 함께 교도소 콘크리트 벽을 부수는 대담한 방법으로 죄수들을 탈옥시켰다. 알 라시드 사칼라훌 바실란 섬 부지사는 “필리핀 최대 이슬람 반군단체인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과 알카에다 연계조직인 ‘아부 사야프’ 소속 죄수들이 달아났다”고 밝혔다. 이사벨라 교도소는 2004년 4월에도 이슬람 무장단체 출신을 포함한 죄수 53명이 탈옥한 적이 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이 기간에 암파투안 추종 세력을 포함한 최소 247명이 영장도 없이 체포됐다. 야당 등은 “필리핀 헌법상 계엄령은 외적 침입이나 국내 반란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만 선포할 수 있다”며 “참사를 빌미로 법을 기만하고 장기집권을 도모하려는 술수”라고 비난했다. 현 정부의 지지율은 마르코스 정권 이래 가장 낮은 상태. 아로요 대통령은 1일에는 퇴임 뒤 내년 하원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해 논란을 빚고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